나는 2G다. 카톡이 안된다고 사방에서 성화다. 그래도 고집은 있다. 미련퉁이라서 23년째 써온 번호를 바꿀 의향이 없다. 010을 쓰면 좋겠지만 모르긴 몰라도 내 성격에 이것저것을 깔아 데리고 노느라 정신머리가 사나울 것이다. 안 그래도 가만히 못 있는 성미에 어찌 바삐 끼고 살지 않으랴. 안 내킨다.
한 때, 유행을 좇는 재미로도 잘은 살았다. 광고회사도 몇 년 다녔으니 트렌드를 어찌 피해가리. 연극을 하면서 묘해졌다. 컴컴한 극장과 연습실에 홀려 사는 동안 상전은 벽해가 되었고 나는 어느새 둔해졌다. 아니 뒤처져서 사는 재미를 즐겼다고 봐야 옳다. 그런데 이제는 잠깐만 밖으로 나가도 숨 가쁘게 돌아가는 첨단의 유행에 눈알이 팡팡 돌아간다. 그래도 아직은 13층. 버텨보리. 솔직히, 잘 생긴 스마트폰이라도 전혀 부럽지 아니한 것을 어쩌랴.
어머니 생신이니 주말에 식구끼리 밥 한 끼 하자. 모처럼의 고향행. 하필 토요일 여섯 시 약속이라 하던 일을 마치고 오후 1시쯤 출발하면 목포까지 5시간은 족히 가야 한다. 거기서 고향 집까지는 또 들어간다. KTX는 이미 매진이라 남은 건 고속버스. 인터넷 예매를 하는데, 웬걸? 자리가 많이 비었다. 옛날 대학 다닐 때 강남터미널은 꽤 붐볐었다. 그때 이후로 사실 고속버스를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장가를 가고 애들이 생기고 명절에라도 한번 가면 중간에 자주로 쉬기도 해야 하고 고향에서 바리바리 싸 들고 와야 하니 오래된 로시난테, 승합차가 늘 동지였다. 사실 고속버스가 휴게소에 멈추는 15분간의 인터미션으로는 아이들 제어가 안 된다. 나부터도 그렇다. 그런데 애들도 얼추 커서 앞가림을 하니 전용차선 한번 타보자 했다. 널찍한 좌석을 눕히고 누워서 자보고도 싶었다. 그런데 히야, 여기 봐라. 지하로 럭셔리한 몰까지 겹쳐서 꽤나 낯설다. 터미널 매표창구는 이제 사람이 안 보이고 무인판매기가 돌아갔다. 홈티켓으로 예매해서 타고 보니 한 직원이 버스에 부착된 바코드인식기로 보딩패스하듯 체크를 한다. 히야. 하지만 15분짜리 휴식은 여전히. 국수 먹기도 빠듯하여 반만 먹다 말았다. 하지만 누워 자는 재미가 쏠쏠하여 그야말로 대만족.
연로하신 어머님도 잘 뵈었으니 다시 상경하는 일만 남았는데 매형이 대뜸 갈 때도 버스 타냐. 예. KTX는 다 매진이에요. 그래? 알아봐 줄까, 하더니 스마트폰으로 금세 찾아낸다. 앱을 깔았단다. 히야. 표가 있다. 금방 들어가 부랴부랴 예매를. 불과 몇 분만의 쾌재. 매형은 슬쩍 폼을 잡았고 나는 우러러보았다. 대단하십니다요.
연극을 하다 보면 수시로 스태프들과 의견을 교환해야 한다. 일정을 체크하고 무대미술도 자주 논의하고 가끔 샘플이나 레퍼런스가 될 만한 여타의 자료들도 공유해야 한다. 나는 2G라서 조연출이 따로 문자를 보낸다. 또 그림을 보내도 너무 작게 보여서 이메일로 다시 받아봐야 한다. 그림이 첨부된 문자는 아예 보이지 않아서 대놓고 무시하기도 일쑤다.
같이 일하는 칠순의 어르신은 나만 보면 핸드폰을 바꾸라고 보채신다. 처음엔 농담 같았지만 지금은 사뭇 나무라시는 투다.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시다. 처음에는 당당하게 저의 취향입니다, 했지만 이제는 그냥 듣고만 있다. 미안한 마음도 없지는 않다. 아, 세상살이란 이렇게 떠밀려서 가는 거구나.
얼마 전 환경문제로 경유의 세금을 물리네 마네로 시끄러웠다. 2003년산 로시난테를 살 때만 해도 경유차라서 세금도 유지비도 꽤 적었다. 가난하니 당연히 경유차다. 이제는 모든 것이 전도되거나 그럴 조짐이다. 연극을 하다가 장렬히 산화하겠다던 30대 초반의 작심이 불현듯 민망하다. 과연 일곱 자리의 2G폰을 언제까지 수호할 수 있을까. 로시난테만은 중고로 팔지 않고 안락사시켜 그 명예, 기필코 지키리라. 예? 아무도 안 사요?
고선웅 연극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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