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쯤 겨울, 이른 아침이었다. 동물병원에 가느라 반려견과 함께 택시를 잡는데 여간 잡기가 쉽지 않았다. 개와 함께 택시잡기가 매번 쉽지 않은데 이날은 유난했고 1시간이 넘게 겨울 추위에 떨고서야 겨우 택시에 탈 수 있었다. 고맙다며 차에 올라타는 우리에게 기사님이 차 잡기 어렵지 않았는지 묻는다.
“첫 손님으로 여자 태우면 재수 없다고 하는데 짐승까지 있으니 어렵지.”
그제야 수많은 빈 택시가 우리 앞을 스쳐간 이유를 알았다. 개가 원인일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공범이었네. 여자와 동물. 누군가의 눈에는 다르지 않은 대상이다. 이런 나의 자조에 ‘피해의식 쩌네.’, ‘약자 코스프레하네.’ 라고 혀를 찰 수도 있지만 남성이 폭력을 행사할 때 여성과 동물을 같은 방식으로 대하는 유사성은 곧잘 드러난다. 2007년 캐나다의 가정폭력피해여성쉼터에서 생활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몇몇 남성은 폭력을 행사하면서 아내를 기르는 반려견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아내와 개를 동일시한 것이다.
강남역에서 여성이 살해된 사건 이후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언어 표현은 그 자체가 해방이다. 사건 이후 이어진 행사 중 밤길 걷기 행사 포스터에는 여성, 노인, 동물, 임산부 등 여러 사회적 약자가 등장했다. 이번 사건을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고 사회 문제로 환원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 현상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은 얼마나 소중한가.
아르멜 르 브라 쇼파르의 저서 ‘철학자들의 동물원’을 보면, 인류의 긴 역사는 동물을 인간과 구별하려고 애썼다. 이성, 감정 등 차이를 주장하면서 우월성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동물의 영역에 흑인, 여성, 장애인 등 약자를 포함시키려 노력했다. 그들을 동물의 영역에 잡아넣어 노동과 정치 등 공적인 공간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했다. 그런데 현대과학은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확인하기는커녕 차이가 없음을 계속 확인해 주고 있다. 그러니 긴박해진 주류는 ‘불쾌한 것, 저속한 것’을 약자에게 전가하고 내 것이 아닌 척 비난한다.
이번 사건을 통해 집단이 다름과 혐오에 대해서 배우고 각성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은데 그 안에서 비난과 증오의 언어가 난무한다. 때로 남성과 여성의 대결로 저속하게 몰고 간다. 동물 관련 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해 캣맘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원인이 밝혀지기 전부터 언론은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행위가 갈등을 일으킨다고 부추겼고, 댓글에는 캣맘에 대한 비난의 글이 달렸다. 며칠 전 SNS에 뜬 한 아파트의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말라는 경고문 말미에 ‘벽돌 사건 참조’라는 문장이 삽입되어 있었다. 여섯 음절이 주는 공포와 협박의 의도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국제연합기구는 1979년과 1993년 두 번의 보고문을 통해 유고 수용소에서 폭력을 당한 여성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여성이 여성이기 때문에 처하는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음’을 입증했다. 그런데 이 선언의 ‘여성’의 자리에 동물, 아동, 장애인, 경제적 약자인 비정규직과 일용직 등 사회적 약자를 넣으면 현재 우리 사회의 이야기가 된다. ‘동물이 동물이기 때문에 처하는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음’, ‘장애인이 장애인이기 때문에 처하는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음’, ‘비정규직이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처하는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음’.
사회,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에 약자에 대한 편견, 무시, 조롱은 급증한다. 현실의 책임을 그들에게 전가하는 방식이다. 영화 ‘주토피아’는 다름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할 때 어떻게 공포와 혐오로 되어가는 지 보여준다. 다름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불편함을 상대방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상대에 대한 존중과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되는 평등한 사회에서는 모두가 안전하다.
현재 한국과 같은 위험사회에서 앞으로 많은 위험은 약자에게 쏠릴 테고 사회는 책임지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이걸 막기 위해서 약자는 부지런히 발언하고 다른 약자와 연대해야 한다. 그런데 동물은 인간의 언어로 발언하지 못하니 그들의 옹호자들이 대신해서 발언하고 연대하려면 부지런히 공부하고 실천해야 한다. 바쁘다 바빠.
김보경 책공장 더불어 대표
참고한 책: ‘철학자들의 동물원’, 아르멜 르 브라 쇼파르, 동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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