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건강한 밤 나들이 명소 기대
연일 인산인해… 기존상가 일부 야간 연장영업 호응
시장 내 기존 먹거리 골목 등 다른 골목도 북적… 시너지효과
화장실ㆍ노상방뇨ㆍ쓰레기 등 눈살… 먹거리 중심 구성 단순 해결과제
“대구 사람 전부 다 나온 거 같아요!” 지난 4일 서문시장 야시장을 찾은 곽수진(26ㆍ여ㆍ대구 달서구)씨의 일성이다. 평소 대학가나 동성로 등 ‘젊은이의 거리’에 익숙한 곽씨는 “전통시장 하면 왠지 어색하게 느껴졌는데, 핫도그를 사먹으려고 길게 줄을 서는 일조 재밌었다”며 “새로운 데이트코스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저녁 개장한 서문시장 야시장의 출발이 산뜻하다. ‘개업발’일 수도 있지만 사람이 지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룬 것은 1980년대 이전 서문시장의 성세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동산병원 건너에서 큰장삼거리까지 너비 12m, 길이 350m구간의 공식 야시장은 물론 서문시장 전체가 밤마다 들썩이는 것이다. 어묵 떡갈비 수제버거 베트남쌀국수 크레페 족발 닭강정 찹쌀탕수육 케밥 계란빵 등을 판매하는 80개의 판매대가 서문시장 르네상스를 불러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서문시장 야시장은 일반 상가 대부분이 오후 6시30분쯤 철시한 뒤 7시부터 불을 밝혀 자정까지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현충일인 6일엔 야시장 중간 공연장에서 이벤트와 음악회 등을 중단했다.
개장 후 주말 연휴 동안 찾은 사람은 수십 만 명에 이른다. 단 3일 만에 노약자를 제외한 대구시민 절반인 100만 명이 찾았다는 주장이 무리해 보이지만, 숫자와 무관하게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는 것은 팩트다.
5일 밤 찾아 본 야시장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3대가 함께 나온 가족단위 관광객부터 연인까지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친구와 함께 나온 임현수(17ㆍ고2)군은 “깐쇼새우와 문어꼬치, 베트남쌀국수 등을 몇 십 분씩 줄 서 사먹었는데 지루한 줄 몰랐다”며 “먹을 게 모여 있어 편하고 볼거리도 있는데다 집에서도 야시장에 간다고 하니 안심하는 눈치였다”고 말했다. 아내와 저녁을 먹고 산책 겸 구경을 나왔다는 김영배(58ㆍ대구 달서구)씨는 “상상 이상”이라며 “전통시장에 이렇게 젊은이들로 가득한 것은 생전 처음 보았다”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장문수(48ㆍ대구 서구)씨는 대만식 빙수를 사기 위해 기다리는 중2, 고2 두 딸의 모습을 연신 찍어댔고, 박상희(29ㆍ경북 경산시)씨는 사촌동생들과 함께 SNS에 뜬 무 떡볶이를 맛보려고 찾았다고 했다.
상인들도 손님 응대에 정신이 없으면서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10시쯤 되자 준비한 재료가 동이 났다며 일찍 마감하는 상인들도 보였다. 이상윤(32) 동양국수백과 대표는 “300~400인분은 판매한 것 같다. 장사가 아주 잘됐다”며 “첫날은 현장에서 재료준비를 한다고 브레이크타임을 걸었지만 오늘은 미리 준비해 어제 보다 빠른 시간에 같은 양을 팔았다”고 밝혔다. 천연염색 스카프 등을 판매하는 이효진(30) 이조패브릭 대표는 “오늘 하루 100점 정도 팔았으니 잘 된 것”이라며 “어제(개장일)보다 눈에 띄게 사람이 줄어든 것 같아 조금 걱정”이라고 말했다.
야시장이 터져나가자 주변 골목 노점상도 덩달아 호황을 누리고 있다. 서문시장 유명 먹거리골목인 1, 2지구 사이엔 떡볶이나 우동, 국수 등을 먹으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밤 11시가 넘어서도 2지구 앞 가판대에 옷가지를 고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서문시장 동산상가와 2지구 일부 가게는 오후 9시까지 2~3시간 연장영업을 했다. 이민규(47ㆍ서문시장 2지구 상인)씨는 “9시까지 손님도 없고 해서 문을 닫으려 했는데 그 이후부터 손님이 잇따라 장사를 계속하고 있다”며 “먹거리부터 한 바퀴 돌고 뒤에 옷도 사고 기념품도 사서 귀가하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다른 상인들도 “당장 사람이 몰리는 것 자체가 긍정적으로 조만간 매출증대로 이어질 것”이라며 “연장개장에 따른 직원 인건비 부담 등이 숙제”라고 말했다.
야시장이 엄청난 사람을 불러모으면서 화장실 쓰레기 주차 등의 문제가 불거졌지만 대구시와 중구청은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존 상가가 완전 철시하는 오후 9시부터는 대부분의 시민들이 화장실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급한 마음에 큰길 건너 동산병원으로 몰리면서 환자들의 안전과 병원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병원 주차장도 야시장을 찾은 사람들이 점령, 일반 환자와 가족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는 야시장의 이미지를 흐리게 하고 있다. 낮에 나온 쓰레기도 미처 치울 틈 없이 야시장이 문을 열면서 대로변까지 쓰레기동산을 방불케 했다. 기존 노점 좌판 구석구석엔 ‘거름’냄새가 지독하게 풍겼다.
게다가 야시장 80개 부스 중 65개가 먹거리라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광주에서 왔다는 문정현(29ㆍ여)씨는 “광주 야시장은 구성이 다양해 입 뿐만 아니라 눈과 소비욕구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다”며 “숨은 실력자들이 만든 소품이나 생활용품 혹은 특이한 상품이나 기념품을 파는 점포가 많아지면 좀 더 오래갈 수 있는 재미있는 시장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키나 카마타(23ㆍ일본 히로사키시)씨는 “실제 대구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을 느낄 수 있어 다른 일본인 관광객들에게도 서문시장 야시장을 추천하고 싶다”며 한편 “안내 센터 등 무엇을 어디에서 팔고 있는지 등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아쉬웠다. 도로 곳곳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스태프가 리플렛을 나눠주고 있었지만 수많은 인파에 비하면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기존 상가 일각에선 “1년 내내 유명인을 불러와 공연을 할 수도 없는데 먹거리밖에 없어 얼마나 갈지 걱정”이라며 “서문시장 야시장에만 있는 특화된 아이템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하고, 근대골목 달빛투어 등과 연계해 다시 찾는 야시장이 돼야 기존 상가도 살고 야시장도 번창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한번 정도는 가 볼만 하다”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외지 친구들과 4일 저녁 일찍 야시장을 찾은 김모(27ㆍ대구 달성군)씨는 “지역민인지, 상가 활성화인지, 외국인 관광객 유치가 목적인지 누구를, 무엇을 위한 야시장인지 의심스럽다”며 “이 모든 것을 노리더라도 단계적으로 추진해 정체성을 확실히 해야 스토리텔링이 되고 사람들이 자꾸만 가고 싶은, 누군가를 데려가고 싶은 시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기존의 서문시장이 부활하기 위해선 야시장을 찾아온 고객들에게 카드결제ㆍ교환ㆍ환불 기피, 사람에 따라 다른 가격 등의 이미지 쇄신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글ㆍ사진 배유미기자 yu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