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도 전개도 절정도 결말도 다 아는 이야기다. 너무나 익숙한 제목에 뻔하다 싶은 내용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흥미는 떨어지고 호기심은 거의 바닥이라고 할 만한 이 영화, 정작 보고 있자면 손에 땀이 쥐어진다. 이야기는 예상대로 흘러가는데 가슴 먹먹한 교훈까지 전한다. 9일 개봉하는 ‘정글북’은 식상함이라는 선입견을 신선함이라는 관람 후기로 바꿔놓는다. 첨단 기술과 빼어난 연출력이 고전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새삼 창의력의 중요성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영국 작가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의 동명 원작소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훌륭한 고전은 여전히 울림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이야기 전개는 우직하다 싶게 원작을 따른다. 아기 때 정글에 홀로 남겨진 모글리(닐 세티)가 스크린 중심에 선다. 늑대 무리에서 자라나 늑대로 살고자 했던 모글리는 정글의 무법자인 호랑이 쉬어칸의 위협을 받으며 인간들 세상으로 떠난다. 모글리는 마을로 향하는 과정에서 커다란 비단뱀의 먹이가 될 뻔도 하고 우정을 가장해 잇속을 챙기려는 곰 발루를 마주하기도 한다. 정글을 압제하며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쉬어칸에게 모글리가 맞서는 과정이 절정을 형성한다.
모글리의 아버지가 짧게 등장하는 장면 등을 빼면 106분의 상영시간 동안 인간은 모글리뿐이다. 늑대와 흑표범, 곰, 호랑이, 코끼리, 원숭이, 고슴도치 등 정글의 모든 동물들은 컴퓨터그래픽(CG)에 의존해 표현할 수밖에. 인간과 CG가 어우러져 ‘연기 앙상블’을 펼쳐내야 하는 난관을 돌파하며 영화는 감동을 빚어낸다. 모글리를 키운 늑대의 모성애, 모글리에게 이기적으로 접근했다가 우정을 만들어가는 곰의 순정, 정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모글리의 용기 등이 웃음과 눈물을 제조해낸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흔하디 흔한, 그러나 외면할 수 없는 명제도 영화는 세련된 화법으로 그려낸다. 특히 모글리가 횃불을 들고 정글을 달리는 장면은 꽤 상징적이다. 인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던 불이 결국 자연을 파괴하는 양날의 칼이었음을 암시하며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 과연 무엇인지 묻는다.
감독은 존 파브로. ‘아이언맨’ 1,2편을 연출하며 마블 전성기의 시작을 알렸던 이 감독은 자신의 재능이 슈퍼히어로물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어른과 아이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어려운 과제를 해내는 오랜 노하우가 느껴지는 영화다. 아니나 다를까. 애니메이션과 가족영화의 명가 월트 디즈니의 신작이다. 12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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