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박 조코비치(29ㆍ세르비아·세계 1위)가 마침내 커리어 그랜드슬램(4대 메이저대회 우승)의 마지막 남은 퍼즐을 맞췄다.
조코비치는 6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스타드 롤랑가로에서 열린 프랑스오픈 테니스 남자단식 결승에서 앤디 머레이(29ㆍ영국ㆍ2위)를 3시간 3분간 접전 끝에 3-1(3-6 6-1 6-2 6-4)로 물리치고 정상에 올랐다. 우승 상금은 200만 유로(약 26억4,000만원)다.
“매년 시즌이 시작될 때 프랑스오픈 우승은 나의 우선순위다. 올해에도 우승할 기회가 왔다”고 결승전 각오를 밝힌 조코비치는 강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3전 4기’ 끝에 프랑스오픈 정상에 오르며 역대 8번째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주인공이 됐다. 2008년 호주오픈에서 처음 메이저 대회 단식 정상에 오른 조코비치는 2011년에 윔블던과 US오픈을 제패했고, 올해 드디어 롤랑가로 무대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서며 4대 메이저 대회 우승컵을 모두 수집했다.
지금까지 남자 테니스에서 커리어 그랜드 슬램은 프레드 페리(영국ㆍ1935년), 돈 버지(미국ㆍ1938년), 로드 레이버(호주ㆍ1962년), 로이 에머슨(호주ㆍ1964년), 안드레 애거시(미국ㆍ1999년), 로저 페더러(스위스ㆍ2009년), 라파엘 나달(스페인ㆍ2010년) 등 7명이 달성했다.
우승을 확정한 조코비치는 코트에 하트를 그리고는 그 위에 누워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기쁨을 만끽했다. 조코비치는 유창한 프랑스어로 “굉장히 특별한 순간이다. 어쩌면 내 선수 경력에서 가장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벅찬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유고 연방 내전이 한창일 때 세르비아에서 유년기를 보낸 조코비치는 네 살 때부터 테니스를 시작했다. 참혹한 내전을 겪었고 폭탄이 쏟아지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그는 방공호나 물 빠진 수영장 안에 들어가 담벼락을 ‘히팅 파트너’로 삼아 훈련했다.
여섯 살 때 유고 출신 테니스 선수 옐레나 겐치치의 눈에 띄어 본격적으로 테니스를 배운 조코비치는 열두 살이 되면서 독일로 테니스 유학을 떠나 엘리트 주니어 선수의 길을 걸었다.
그는 21세인 2008년 호주오픈에서 우승하면서 떠오르는 별로 주목 받았지만 기대와는 달리 한동안 지지부진했다. 조코비치는 기량은 정상급이나 랠리가 길어지고 체력소모가 심한 경기에는 곧잘 경기 중 호흡곤란 등의 이유로 메디컬 타임을 불렀다. 특히 볼의 속도가 줄어 랠리가 길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클레이코트에서는 유독 심했다.
반짝 스타에 그칠 뻔했던 그를 살린 건 글루텐을 먹지 않는 식이요법이었다. 조코비치는 2013년 펴낸 자서전 ‘승리를 위한 서브(Serve to Win)’에서 자신이 글루텐 알레르기가 있어 운동할 때 체력이 심하게 떨어졌다고 고백했다. 조코비치는 영양학자의 조언에 따라 2010년부터 글루텐이 들어간 음식을 끊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더 이상 피곤하지 않았고 경기 중 호흡곤란도 사라졌다. 이후 조코비치는 2011년 한해 동안 43연승을 포함해 51전 50승을 기록했다. 그 사이 3차례나 메이저 우승컵을 차지하며 세계랭킹 1위에 처음으로 올랐다.
조코비치의 시선은 이제 ‘캘린더 골든슬램’이라는 새로운 역사에 향해있다. 캘린더 골든슬램이란 한 해에 4대 메이저 대회와 올림픽을 모두 석권하는 것을 말한다. 애거시와 나달이 ‘커리어 골든슬램’을 달성했지만 캘린더 골든슬램을 이룬 남자 선수는 지금까지 한 명도 없다. 독일의 슈테피 그라프가 1988년 서울올림픽 여자 단식과 4개 그랜드슬램에서 모두 정상에 오르며 남녀 선수 최초로 캘린더 골든슬램이라는 업적을 남겼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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