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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문화를 재평가하면 미래의 길 찾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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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문화를 재평가하면 미래의 길 찾을 수 있어”

입력
2016.06.06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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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열 경희대 교수는 “페스트라이시라는 이름이 발음하기 어렵다며 장인이 지어준 이름이 이만열”이라며 “한국에서 활동하려면 한국사람처럼 해야겠다고 생각해 이 이름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이만열 경희대 교수는 “페스트라이시라는 이름이 발음하기 어렵다며 장인이 지어준 이름이 이만열”이라며 “한국에서 활동하려면 한국사람처럼 해야겠다고 생각해 이 이름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한국은 단기간에 고도의 성장을 이뤄낸 신화를 먼저 극복해야 합니다. 산업화의 좋은 점도 물론 있지만 대기업 중심의 성장만 생각하다 보니 좋지 않은 영향도 많았어요. 일단 한국 전통의 문화와 경제, 교육을 재평가하고 그 안에서 미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최근 에세이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2011) 개정판을 낸 이만열(52ㆍ임마누엘 페스트라이시)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ㆍ아시아인스티튜트 소장은 한국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묻는 질문에 “농업”이라는 뜻밖의 답을 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국내총생산(GDP)에서 농림어업 부문 비중이 고작 2%인 나라가 방향타를 농업으로 맞춰야 한다니 무슨 뜻일까. 그는 “농업은 생존의 문제인데 한국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듣기 싫어한다”며 운을 뗐다. “농업은 땅과 물만 있으면 할 수 있으니 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독립성이 있습니다. 아래부터 시작하는 경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거죠. 당장은 미국에서 농산물을 싸게 사올 수 있지만 언젠가 미국의 사막화가 가속화되면 더 이상 그럴 수 없을 겁니다. 한국이 생각하는 자유무역 시스템이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어요.”

이 교수는 한국인들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러시아와 중국은 이미 사막화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고 사막화 지역이 남하하면 서울까지 올 수 있다”며 “북한의 가장 큰 문제도 핵무기 개발이 아니라 사막화로 농토를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태어난 그는 한중일 3개국의 문화와 언어에 능통한 동아시아 전문가다. 아시아인 비중이 높은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아시아에 관심을 갖게 됐고 예일대에서 중문학을 전공, 하버드에서 동아시아 언어문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1년 예일대 동기인 재미교포 친구 결혼식 참석차 서울을 처음 방문한 그는 1997년 한국인 아내와 결혼해 미국과 일본, 한국을 오가다 2007년부터 줄곧 한국에서 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해 화제가 된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2013) ‘세계의 석학들 한국의 미래를 말하다’(2012) 등 한국에 관한 책을 여러 권 펴냈고 연암 박지원이 한문으로 쓴 단편소설 10편을 영어로 번역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는 2007년부터 대전 우송대 교수로 재직하며 느낀 것들과 개인사, 한국에 대한 애정과 비판 등을 엮은 에세이다. 이번 개정판은 30% 정도 새로 쓰고 일부 글을 추가했다. 개정판을 다시 내기까지 5년 사이 그는 “한국 사회가 훨씬 복잡해졌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가 안타깝게 느끼는 건 교육 분야다. 인문학은 대학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고, 대안학교는 점점 상업화되고 있다. 그는 “인문학을 비즈니스로 접근하는 사람이 늘긴 했지만 실제로 대학 안에서 인문학은 죽어가고 있다”며 “대학이 취업을 위한 고등학교의 연장선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문학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학생들이 살아남기 위해 인문학이 필요해요.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회사에 취직해도 5년 이내에 일자리를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인문학을 공부하면 급격한 사회변화와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을 때 민첩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인문학자로서 대학의 변화에 실망하고 ‘외국인’이라고 차별받는 두 자녀 때문에 고민도 많지만 한국보다 언어 소통이 더 편한 일본이나 미국으로 떠나지 않는 이유가 있다. “한국의 정체성은 아직 불확실하고 불명확한 게 있으므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다른 나라보다 많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동력을 한국 전통문화를 꼽았다. 그가 농업과 마을공동체운동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선 시대의 행정과 통치, 교육과 농업에서 한국의 미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처럼 과거의 좋은 사례에 상상력을 더하면 새로운 걸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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