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부작용 조작, 뇌물 공여, 거액 로비 등 일삼아
“정부·기업 방치 속 극소수 치부, 빈국 보건 붕괴”
세계 제약산업계에 심각하고 고질적인 부패가 만연돼 있으나 각국 정부와 제약회사들이 사실상 이를 방치하다시피 하고 있다고 국제투명성기구(TI)가 비판했다. TI는 ‘제약산업 부패 실태’ 보고서에서 제약회사들의 부정과 비리는 연구개발(R&D)에서부터 제조, 허가와 등록, 마케팅, 관급 입찰, 유통, 서비스 등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로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6일 TI의 '제약산업 부패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약의 효과 및 안전성 관련 시험 단계에서부터 제약회사의 개입이 일상화돼 있다. 이 과정에서 약의 효과를 부풀리고 부작용을 감추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고 연구논문이나 저자의 조작까지도 서슴지 않지만 많은 학술지가 이를 거르지 않고 있다.
제약업체들은 부작용을 감추거나 허가받지 않은 용도 및 대상자(미성년자 등)에게 약을 판매하거나 의사·보건전문가·관리·정치인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천문학적인 규모의 합법·비합법적 자금을 제공해오고 있다.
이로 인해 환자들의 목숨과 건강이 위협받고 경제적 부담이 커지며 국가 보건재정에도 큰 구멍이 뚫리고 있다.
선진국, 후진국 가릴 것 없이 제약업체들이 가격 책정 과정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적지 않은 나라의 관급 입찰과정에서 부정과 비리가 횡행한다.
개도국이나 저개발국에선 미흡한 제조기준조차 지키지 않고 우회하고 있다. 많은 개도국 이하 저소득 국가 소비 의약품 중 4분의 1이 품질 미달일 정도여서 환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이는 세계적 문제 중 하나인 항생제 내성균 확산의 중요 원인 중 하나다.
이런 구조 속에서 극소수는 엄청난 이득을 보지만 많은 사람이 건강과 경제적 손해를 보고 있으며 가장 가난한 나라의 보건체계가 거의 붕괴하는 일도 일어난다.
제약업계가 연루된 대형 부패사건들이 세계 각지에서 끊이지 않는데도 이로 인해 '사회 전반이 부식되는 문제'를 각국 정책 당국이 심각하게 다루지 않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라고 TI는 밝혔다.
세계 의약품비 지출이 2018년까지 1조3,000억달러(약 1,540조원)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제약업계는 엄청난 재력에 바탕을 둔 막강한 로비력으로 학계와 정부, 정치권에 과도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TI는 제약회사들이 부정과 비리로 거두는 이익에 비해 벌금과 징벌의 수준이 낮아 재발을 막지 못한다면서 기존 법규의 집행 및 처벌 강화, 부패 억제 정책 확대 등을 촉구했다.
또 각국 정부가 회사 규모나 관련 인물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부패 용의자는 엄정 수사해 처벌한다는 의지를 밝히고 실천하며 정책과 제도도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TI 영국지부가 지난 2일자로 발간한 이번 보고서는 독일 베를린에 본부를 둔 TI가 올해 초 제약산업의 부패구조를 파헤치고 개선하는 중장기사업에 착수한다고 밝힌 이후 첫 성과물이다.
임소형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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