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통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깨달음을 전하는 일을 뜻하는 사자성어 ‘염화미소(拈華微笑)’는 선(禪)의 기원과 관련한 부처님의 일화다. 석가모니가 설법 모임(영산회)에 참석해 가르침을 요청 받고 아무 말 없이 그저 연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였다. 아무도 그 뜻을 몰라 어리둥절했는데 오직 가섭(迦葉)만이 참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석가모니가 기뻐하며 “나에게 정법안장과 열반묘심이 있으니 이를 가섭에게 부촉(불법의 보호와 전파를 맡김)하노라”며 법통을 물려줬다는 얘기다.
▦ 염화미소 일화는 교종(敎宗)과 달리,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좌선을 통해 스스로 깨달음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선종(禪宗)의 근거가 됐다. 그래서인지 6세기에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 선종의 초조(初祖)가 된 달마대사 이후 중국과 우리나라 선종 조사(祖師)들의 깨달음과 관련된 행장엔 알 수 없는 선문답으로 가득하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하고 물으면, “마른 똥 막대기니라”라는 답이 나온다(<무문관(無門關)> 중에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는 고(故) 성철 스님의 말씀도 선문답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 염화미소 일화 자체가 허구라는 주장도 있다. 언론인이자 재야 불교 연구가인 김병훈씨는 저서 <해커 붓다>(반디 간)에서 일화가 수록된 <대범천왕문불결의경>은 석가모니 사후 천 년도 더 지나 중국에서 만들어진 위경(僞經), 즉 가짜 경전이라고 했다. <인도철학과 불교>의 저자인 권오민씨 역시 “염화미소는 물론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천 년 이상 세월을 지나며 염화미소의 일화는 이미 불교의 법통과 진리를 전하는 확고한 방법으로 정착된 셈이다.
▦ 최근 불교 조계종단에서 염화미소가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종단 내 ‘총무원장선출제도혁신특별위원회’가 오는 21일 임시 중앙종회에 부의할 차기 총무원장 선출제도로 ‘염화미소법’을 확정한 것이다. 염화미소법은 직선제를 원하는 종단 내의 다수 의견과 달리, 선거인단이 총무원장 후보 3명을 정해 올리면, 종단의 큰 스승인 종정이 그 중 한 명을 추첨하는 방식이다. 총무원장 선출까지 다수결이니 뭐니 하는 민주적 절차를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 해도, 추첨으로 법통을 세우는 게 염화미소와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건지 아리송하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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