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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의 길 위의 이야기] 먼 날의 독자

입력
2016.06.05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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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리가 같은 주민이 되었어’라는 문자를 받았다. 문자를 보낸 사람은 사서인 친구인데, 이사가 쉬운 일이 아니라 내심 반신반의하다 어제 근처로 온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수성동계곡에 있는 친구의 아파트는 성인 네 명이 살기에는 좁은 듯했으나, 풍광이 모든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그동안 쓰던 살림살이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으로부터 친구의 이사 준비가 시작되었다 한다. 아파트 평수를 절반 이상 줄이며 평소 꼭 살아보고 싶던 곳으로 이사를 강행한 친구의 결단력도 놀라웠지만, 그 뜻에 가족 모두가 찬성했다는 사실은 더욱 놀라웠다. 강 건너에서 사는 사람들은 강북으로 이사하는 것을 엄청난 몰락으로 여김을 나는 여러 번 느꼈다. 세속적으로는 몰락의 강을 건너온 친구에게서는 몰락의 기운은커녕 대성한 사람의 기운만 가득했다. 동행했던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우리 둘은 윤동주 언덕을 향해 걷기로 했다. 그 옛날 윤동주의 발길이 그곳까지 닿았을 리 없지만, 그 언덕은 조성되자마자 명소가 되었다. 윤동주 시비 뒤편에는 ‘슬픈 족속’이라는 시가 새겨져 있는데, 나는 그 시를 퍽 좋아해 속으로 계속 외며 걸었다.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츤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머리를 질끈 동이다’ 간결한 묘사로만 된 짧은 한 편의 시가 먼먼 날의 독자인 나의 심금을 울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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