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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산부인과 실습 논란에 대해

입력
2016.06.05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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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상황이지만 응급실에서 분만하는 경우가 있다. 분만실이 아닌 응급실에서 분만해야만 하는 상황이니 얼마나 급박했겠는가. 택시에서 양수가 터져 의료진이 응급실 앞에 주차된 택시로 달려가 탯줄을 자르고 아이를 받은 경우까지 있었다. 나는 그때마다 응급실에 있는 유일한 책임의사로서 그 상황들을 관장해야 했다.

하지만 나도 처음엔 분만을 온전히 목격한 경험이 학생 때가 유일했던 의사였다. 산부인과 의사가 아닌 이상 의사들의 경험은 나와 비슷하다. 그래서 이런 상황은 문헌적인 습득에 더해, 교육받은 의사의 기본적인 소양으로 해결해내야 했다. 게다가 글로 알게 된 지식으로 위기 상황에서 대처하기는 어렵다. 그 결과가 인간의 생명과 직결되는 의학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무리 문헌을 잘 외워도 실제 그 과정을 경험하지 않으면 자칫 환자에게 위해를 끼칠 수도 있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의사들이기 때문에 아무리 간단한 시술도 처음에는 꼭 숙련자의 지도를 받아 행하게 돼 있다.

내가 급박한 분만 상황에 닥칠 때마다 믿을 수 있었던 것은 학생 때 보았던 분만의 기억이었다. 지금은 누군지 기억할 수도 없는 산모에게서 새 생명이 태어나던 아름답고 숭고했던 과정. 이 장면이 똑똑히 떠올라 나는 다른 환자들에게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식과 경험의 결합은 순조로워서, 내게 위급한 상황을 견디고 건강한 아이와 산모를 산부인과 의사에게 인계할 수 있게 했다.

나는 매번 그 뿌듯한 과정에서 당시의 산모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생면부지의 남에게 분만 과정을 보이는 일은 당연히 바라지 않았을 것이며, 그것을 숭고한 희생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나는 그것에 대해 매우 감사하다고. 덕분에 현장에서 두 사람의 생명을 동시에 책임질 수 있는 의사가 됐고, 또 내가 이번에 구해 낸 생명에 있어서도 대신 감사하다고.

의대 실습 과정에서 유독 분만에 관한 논란이 많다. 얼마 전 산모가 느끼는 모멸감을 골자로 언론에 보도되기까지 했다. 기본적으로 분만이 매우 특별한 의학적 상황에 속하기 때문이다. 일단 병이 아니기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으며, 대개 환자의 의식이 명료한 상태에서 급박하고 다양한 일이 발생할 수 있고, 가임기의 젊은 여성에게만 생기며, 두 사람의 목숨이나 걸려 있지만 자연적으로 일정 확률의 사망이 발생한다.

이 상황을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의사뿐이다. 환자에게도 그 급박한 상황에 믿을 수 있는 것은 의사뿐이다. 분만이라는 생사가 걸린 특수한 과정에 속수무책인 사람을 어떻게 의사의 자격이 있다고 할 것인가. 의사들과 그들이 만든 교육과정도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자연 분만은 의사가 되기 위한 실습 과정에서 반드시 숙지하도록 명시돼 있는 것이다.

지금 시대에는 당연히 수련병원이라 할지라도 산모의 동의 없이 무례하게 실습을 진행할 수 없다. 실습 진행도 그 절차에 있어서 충분히 논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자에게 무례함을 끼치는 행위는 산모를 직접 대해야 하는 의사들이 먼저 원하지 않는다. 실제로 현재 분만 실습은 수련 병원에서만 이루어진다. 또 수많은 환자를 다룬 산부인과 의사의 주관에 의해서만 조심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논의에 충분히 공감하는 의사들도 최근 보도에 거부감을 드러낸다. 이처럼 조심스럽게 이뤄지는 과정이 무시된 채 의사가 환자의 인권을 해치는 존재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이미 수없이 이루어졌던 숭고한 분만의 과정에서 목도한 장면에 감사해 왔으며, 그 희생 덕에 생명을 보존하고 다른 생명을 이 세상에 가져오고 있다. 환자의 인권을 논하는 이 당위성 있는 과정에서 이 실습의 간절함과 의사들이 느껴온 감사함, 그리고 그로 인해 살아나는 생명에 대한 입장이 간과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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