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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홍과 6월 4일 & 두 번의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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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홍과 6월 4일 & 두 번의 월드컵

입력
2016.06.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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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홍(맨 오른쪽) 감독이 2002년 6월 4일 폴란드와 한일월드컵 첫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 황 감독 뒤로 유상철, 최진철, 박지성, 송종국 등 추억의 얼굴들도 보인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황선홍(맨 오른쪽) 감독이 2002년 6월 4일 폴란드와 한일월드컵 첫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 황 감독 뒤로 유상철, 최진철, 박지성, 송종국 등 추억의 얼굴들도 보인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오늘은 6월 4일입니다.

한국 축구의 새 역사가 작성된 날이고 황선홍(48) 전 포항 감독에게는 더욱 특별한 날입니다.

2002년 6월 4일, 한국은 한ㆍ일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폴란드를 2-0으로 이겼습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이후 48년 만에 세운 감격적인 본선 첫 승이었고 한반도 전역을 요동치게 한 4강 신화의 서막이었습니다. 결승골의 주인공이 바로 황 감독이었습니다. 이을용(41)청주대학교 코치의 패스를 받아 기막힌 논스톱 왼발 슛으로 그물을 갈랐죠. 그는 폴란드전에서 신었던 축구화를 자신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물건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계를 되돌려 보면 당시로부터 정확히 4년 전인 1998년 6월 4일의 황 감독의 기억은 온통 잿빛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차범근(63) 전 수원 삼성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던 한국은 프랑스월드컵을 눈앞에 두고 있었죠. 대회 직전 중국과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마지막 평가전을 치렀습니다. 월드컵에 나가지도 않는 중국과 평가전은 아무 실익이 없다는 비판도 나왔지만 대한축구협회는 예정대로 강행 했습니다. 예상대로 중국은 아주 거칠게 나왔고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지만 한국은 엄청난 손실을 입었습니다. 최전방 스트라이커 황 감독이 무릎을 다치고 만 것입니다.

1998년 6월 4일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뛰는 황선홍 감독의 모습. 그는 이날 무릎 부상을 당해 결국 프랑스월드컵에서 1경기도 뛰지 못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1998년 6월 4일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뛰는 황선홍 감독의 모습. 그는 이날 무릎 부상을 당해 결국 프랑스월드컵에서 1경기도 뛰지 못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그에게는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몇 번의 골 찬스를 놓치며 비난의 중심에 섰던 아픈 추억이 있습니다. “평생 들을 욕을 한 번에 다 들었다”고 할 정도로 시달렸죠. 프랑스월드컵에 임하는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량도 뒷받침이 됐습니다. 프랑스에 가기 직전 황 감독은 물오른 감각을 보였고 전문가와 팬들은 그가 본선에서 제대로 ‘사고’를 칠 거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중국전 부상이 모든 걸 앗아갔죠.

지난 달 11일 황 감독과 인터뷰를 하며 1998년 중국전 상황을 물었는데 18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상대 골키퍼와 부딪혀 공중에서 한 바퀴 붕 돈 뒤에 떨어졌어요. 솔직히 처음엔 그렇게 심하게 다쳤다고 생각하지 않았지요. 월드컵을 못 가거나 못 뛸 거라고는 상상도 안 했고.”

황 감독이 멕시코와 프랑스월드컵 1차전에 출전할 수 있을 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는데 대표팀 주치의는 “통증 외 다른 증상은 없으니 진통제를 맞으면 뛸 수 있을 것이다”고 호언장담했죠.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황 감독은 조별리그 3경기 내내 벤치를 지켰고 1분도 못 뛰었습니다. 한국은 1무2패로 탈락했고 쓸쓸히 귀국했습니다.

“무릎을 제대로 굽혔다 폈다 할 수가 없었어요. 진통제를 6번을 맞았는데…. 안 되더라고요.”

프랑스에서 돌아온 뒤 그는 다음 월드컵은 머리에서 싹 지웠다고 합니다. 더 이상 자신에게 기회가 오지 않을 거라 본 것이죠. 하지만 월드컵과 인연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황 감독은 부상에서 회복해 1999년 일본 J리그 세레소 오사카에서 뛰며 25경기에서 24골을 넣는 가공할 득점력을 선보입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J리그 득점왕을 차지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다시 월드컵을 향한 열망이 피어났습니다.

그는 “월드컵에서 받았던 비판은 아시안컵이나 아시안게임, 그밖에 어떤 대회에서 아무리 잘 해도 만회가 안 된다. 결국 월드컵의 한(恨)은 월드컵에서 풀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의 말대로 한ㆍ일월드컵에서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냈습니다. 1998년의 악몽이 4년 뒤 찬란한 환희로 바뀔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렇게 6월 4일은 황 감독은 물론이고, 한국 축구사에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 됐습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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