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북중관계 개선 방향을 ‘차가운 혈맹’으로 잡으면서 동북아시아 정세 전반이 들썩이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용인하지 않는 가운데서도 대북 레버리지를 높였고, 미국은 대북제재 공조의 균열을 우려하며 중국과 북한을 동시에 압박하고 나섰다.
중국은 남중국해 분쟁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등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미국을 겨냥해 북중관계 개선 카드를 꺼내들었다. 미국이 최근 전통적인 친중 성향의 베트남까지 우군으로 포섭하려 드는 등 대중 포위전략을 강화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러시아가 유럽 쪽에 힘을 쏟느라 실제 동아시아에선 중러 밀월관계가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도 북중관계 개선에 나선 한 요인으로 풀이된다.
대신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을 껴안기는 하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북한이 핵 포기 절대 불가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스스로도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할 수 없다고 못박았고, 북한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각도 여전히 싸늘한 만큼 혈맹관계의 복원 가능성을 내비치면서도 당장 가시적인 흐름을 만들어내기 보다는 상황 관리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차가운 혈맹’ 전략은 그 자체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간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약화됐다는 평가를 받아온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훼손했다는 비난을 피하면서도 북한 관리자로서의 입지를 다시 확보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의 발언권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강경한 대북제재로 일관해온 한국ㆍ미국ㆍ일본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공조에 균열이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미국이 사실상 중국의 금융기관과 특정기업을 겨냥한 강경한 조치를 잇따라 내놓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북한의 선(先)비핵화 원칙을 훼손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실제 동북아 긴장 상황의 최대 복병은 여전히 북한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의식해 5차 핵실험 등의 추가도발을 가급적 자제할 가능성이 있지만, 북중관계 진전에 대한 불만이 쌓일 경우 예상과 다른 행보에 나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중국은 나름대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았다고 볼 수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남중국해 분쟁과 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 양안(兩岸ㆍ중국과 대만) 관계 등에서 상대적으로 수세에 몰리는 듯한 상황에서 중국이 빼든 카드가 바로 북중관계 개선”이라며 “중국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전략을 취하는 건 설령 북한이 추가도발에 나서더라도 책임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지를 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양정대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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