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작ㆍ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
처칠 회고록 ‘제2차 세계대전’
“호감 못 느끼는 인물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번역”
“발트해 슈체친에서 아드리아해 트리에스테까지 ‘철의 장막’이 쳐져 있다.”
공산세계와 자유세계간 장벽을 풍자한 처칠의 이 연설은 2차 세계대전 뒤 냉전을 상징하는 말로 회자된다. 처칠은 인류 역사상 최대 전쟁이자 이후 세계사를 재편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지도자였다. 동시에 보수주의자였고 제국주의자였다. 불세출의 정치가이기도 했지만 에세이, 시사평론은 물론 소설, 전기, 회고록, 역사서 등을 집필한 정력적인 저술가이기도 했다.
처칠에게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긴 회고록 ‘제2차 세계대전’의 발췌본이 번역 출간됐다. 발췌본이라 해서 깎아 내릴 필요는 없다. 1946~53년 동안 6권으로 쓴 원본에서 각종 원문 자료만 뺀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원 문장을 가다듬고 잘못된 곳을 바로잡았으니 개정증보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 이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의 전체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전개해 나가는 책은, 개인 회고록이지만 전란의 핵심 인물이 쓴 기록이라는 이유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지정됐다.
차병직 변호사는 명성이 자자한 이 책을 번역해내면서 ‘까칠한’ 역자 후기를 남겼다. “정치가로서의 처칠에 호감을 느끼지 않지만, 좋아하지 않는 인물을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호기심”이 상ㆍ하권 합쳐 1,470쪽에 이르는 책을 우리말로 옮긴 이유다. 차 변호사에게 처칠에 관한 이야기를 최근 이메일을 통해 들어봤다.
-어쨌거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고, 촌철살인 연설가다. 직접 보니 필력이 어떤가.
“글의 구성, 문장의 수사적 표현, 어휘의 선택에 관심이 많은 사람답기는 했다. 그의 글쓰기 격언 중 하나는 ‘따분하게 만드는 방식은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벨문학상은 문학성보다 정치적 이유가 컸다고 본다.”
-2차 대전 지도자의 모습이 주목할 부분일 텐데, 인상 깊었던 장면은.
“일하는 시간 확보를 위해 밤에 적게 자고 낮에 짧은 낮잠을 즐긴 대목이나, 전쟁 와중에 관광지나 격전지를 직접 둘러보는 태도도 인상 깊었다. 영국인 특유의 위트, 여유일 텐데 요즘이라면 비난 대상이 아니었을까.”
-전쟁 영웅 처칠이 영국 총선에선 왜 졌을까.
“충격적이긴 했다. 처칠 자신도 지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영국 국민이 처칠의 독선적 성향을 꿰뚫어봤기 때문이 아닐까. 독선적 태도는 전쟁 수행엔 큰 힘이 되겠지만 총격이 멈춘 뒤 정비와 재건, 특히 창조적 미래를 기획하는 일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리라 본다. 우리도 선거 결과를 두고 민의가 무섭다고 하지만 민의란 알 수 없는 것 아니겠나.”
-이 책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 서술이라는 인상도 지울 수 없다.
“객관적 서술이란 게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어떤 관점이든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중요한 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것이다.”
-처칠에 대해 “영웅이라기보다 영웅이 되고 싶어했던 인물”이라 평가했는데.
“개인 명예에 대한 집착도 있었지만, 처칠은 기본적으로 국가와 국민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명예욕이 있다 해도 사사로운 이익보다 공적 일에 더 열의가 있다는 점에서 박원순 시장과 닮았다. 동시에 민주와 소통을 내세우면서도 불통인 점은 박근혜 대통령과 닮았다. 그래서 이 책은 처칠을 지지하는 사람뿐 아니라 반대하는 사람도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차 변호사는 인터뷰 내내 처칠에게서 현대사회의 해법을 구하려는 태도를 경계했다. “성공한 정치가의 덕목은 대부분 만들어낸 것일 뿐, 결국 당대의 정치가는 우리가 탄생시키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자꾸 과거의 지도자에게서 혜안을 구하려는 것은, 결국 미덥지 못한 현재의 지도자에 대한 불만이 그만큼 크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한소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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