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하는 식물의 뇌
스테파노 만쿠소ㆍ알레산드라 비올라 지음
양병찬 옮김ㆍ행성B이오스 발행ㆍ248쪽ㆍ1만6,000원
가끔 ‘식물인간’이니 ‘식물국회’ 같은 말을 접하게 된다. 활동하던 존재가 활동성을 잃거나 겨우 연명할 뿐 죽은 상태나 마찬가지일 때 ‘식물’이라는 수식어를 달게 되면 멀쩡하던 단어가 쉽게 부정적인 표현이 되어버린다. 식물이라는 뜻의 ‘vegetable’과 관련된 영어 동사 ‘vegetate’도 ‘무위도식하다’라는 뜻이니 식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서양에서 전파되었을 공산이 크다.
생물학 용어에 ‘우점종(dominant species)’이라는 말이 있다. 하나의 종이 다른 종들을 희생시키며 더 넓은 생활공간을 차지하여 어떤 특정 공간을 생태적으로 지배할 때 그것을 우점종이라 한다. 그러면 지구라는 생태계 공간을 지배하고 있는 존재는 뭘까? 인간이라고 답하고 싶겠지만, 틀렸다. 지구의 바이오매스(biomass) 중에서 99.7%가 식물인 것을 감안할 때, 인간도 동물도 아닌 식물이야말로 지구의 우점종이다. 바이오매스란 지구상에서 태양 에너지를 받아 유기물을 합성하는 식물체와 이들을 식량으로 하는 동물, 미생물 등의 생물유기체를 총칭하는 말이다.
이동성도 없고, 동물 같은 지능도 없어 보이며 오로지 수동적 존재로만 인식되는 식물이 어떻게 지구 생태계의 대세가 되었을까? 바이오매스로는 겨우 0.3%에도 못 미치는 우리는 도대체 왜 식물을 철저하게 홀대하는 걸까? 과학자들마저도 일반인 못지않게 식물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식물생리학자 스테파노 만쿠소 박사와 과학작가 알레산드라 비올라는 책 전체를 통해 시종, 우리가 식물에 대해 가지고 있는 피상적 이해와 그로 인한 ‘오만과 편견’에 융단폭격을 가한다.
우선 식물은 매우 영리한 생존 전략을 펼쳐왔다. 식물은 동물의 먹이가 되기 쉬운 점을 고려하여 자신들의 필수 기능을 뇌, 폐, 위장 등의 장기에 집중화시키는 전략을 피하여 폐가 없어도 숨을 쉬고 입이나 위장이 없어도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 이처럼 특별한 생리 때문에 식물은 몸의 상당 부분을 잃어도 생명에 지장이 없으며 쉽게 복구된다. 심지어 어떤 식물은 몸의 90~95%를 잃어도 문제 없다.
저자들은 식물도 인간처럼 오감(五感)을 지니고 있으며 인간의 감각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아가 식물은 오감에 더해 열다섯 가지 감각을 더 가지고 있다. 식물은 의사소통에도 뛰어나다. 뿌리와 잎의 대화와 같은 내부의 의사소통은 물론 식물 상호 간에도 의사소통을 하며, 동물과도 소통한다. 의사소통에는 수압과 화학은 물론 전기신호까지도 이용한다. 이밖에 식물도 친척을 알아본다거나, 육식을 하는 식물이 600여종에 이른다거나, 식물은 무수한 뿌리를 뻗어 마치 군대와 같이 토양을 점령하고 이웃 식물에게 영유권을 주장한다거나, 벌의 암컷을 완벽하게 모방하는 사기꾼 식물이 존재한다는 등 저자가 들려주는 식물세계는 놀랍고 신기하다.
나아가 저자들은 “최근 식물학의 발달에 따라, 우리는 식물이 환경에서 수집한 정보를 보유ㆍ저장ㆍ공유ㆍ처리ㆍ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유기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식물이 지능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영리한 식물이 일관된 방식으로 정보를 획득하고 처리하는 과정을 중점으로 다루는 학문을 식물 신경생물학이라고 한다는데, 매우 유망해 보인다.
이형열 과학책 읽는 보통 사람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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