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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의 길 위의 이야기] 지적 허영심

입력
2016.06.0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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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을 전공한 친구가 있다. 우린 동향이라 윗세대의 정서에 공감대가 크다. 그 세대의 정서에 대한 반감으로부터 시작된 나의 어떤 기질을 일찍 알아챈 친구는 한때 나를 조정일이라 부르기도 했다. 백성을 굶겨 죽이는 김정일의 이름을 내게 척 갖다 붙인 것이다. 처음엔 조정일이라 부를 때마다 큰 거부감을 느꼈지만, 김정일 급이 되지 않으면 깨고 나올 수 없는 뭔가가 내 안에 있었다고 생각하면 그다지 나쁜 별칭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친구의 집은 도서실을 떠올리게 한다. 레일을 깔아둔 책꽂이를 밀면 또 다른 책꽂이가 나오고, 안쪽으로 갈수록 오래된 책들이 내뿜는 냄새가 짙어진다. 친구는 검소하게 사는 학자라서 책이 없었다면 나 정도의 공간에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 어제 하루에만 23상자의 책을 없앴다고 한다. 대부분 쉽게 구할 수 없는 귀한 책들인데 도서관에조차 이용자가 없어 기증받기를 꺼려하는 바람에 더는 둘 곳이 없는 책을 힘들게 정리했다는 것. 그는 근처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내가 지혜롭다고 말했으나, 그가 없앤 책들을 도서관에서 쉽게 찾아 읽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 때문에 귀한 책이 버려지는 현실이 내겐 무척 안타깝게 느껴졌다. 모두들 우리 민족에겐 허영심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책 욕심을 내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가장 먼저 극복한 것은 지적 허영심인가 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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