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효율화 명목 외주 다반사
생산성만 따지는 하청업체
노동자들 과도한 업무로 몰아
스스로의 안전도 못 지키고
시민 안전도 불안한 상황
“공익사업장 외주화 금지 필요”
승객 249명이 부상을 당한 2014년 5월 서울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전동차 추돌은 신호 오류 탓에 발생한 사고였다. 그러나 무리한 외주화가 대형 참사를 빚을 뻔했다는 질타의 목소리가 컸다. 신호체계를 관리하던 곳이 운영사인 서울메트로가 아니라 하청업체였기 때문이다. 서울지하철 1~4호선은 경정비(輕整備)와 시설 유지ㆍ보수, 경비 등 전동차 운행(기관사)을 제외한 대부분 업무를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맡고 있다. 공기업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2008년부터 서울메트로가 정비 같은 핵심 업무까지 외주화한 결과다. 고비용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처방이다. 이후 1년 만에 중정비(重整備)를 포함한 정비 인력도 200명 넘게 줄었다. 하지만 경영 효율화를 핑계로 기업과 정부가 외주화하고 푸대접한 안전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시민을 위협하고 있다.
능률과 바꾼 안전
용역, 파견 등 간접고용에는 수수료가 붙는다. 그런데도 원청 사업주가 이를 선호하는 것은 불황 때 진통 없이 인력 구조조정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이득이기 때문이다. 하청업체끼리 경쟁을 부추겨 낮은 단가에 일감을 발주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산업재해보상보험금 납입 등 직접고용에 수반하는 규제를 피할 수 있고, 노동자가 사고를 당할 경우에도 보상 책임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원청업체가 비용을 줄이는 만큼 하청업체는 노동자의 안전에 지불해야 할 비용을 줄인다는 점이다. 지난달 28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안전문)를 수리하다 열차에 치여 목숨을 잃은 19세 청년노동자 역시 하청업체가 인력 충원을 하지 않은 탓에 밀려드는 업무를 감당하느라 2인1조 근무수칙을 지킬 수 없었다. 비용 대비 생산성만 따지다 사람의 생명은 뒷전이 된 셈이다.
서울지하철 1~4호선 운행을 책임지는 서울메트로는 최근 10여년 간 인력을 제대로 충원하지 못하다 2014년에야 겨우 300명을 채용했다. 하지만 여전히 신호 관리 등 일부 직종은 목표 정원에 못 미치고 있다. 서울지하철노조 관계자는 “만성 피로에 시달리는 직원이 많아 시민 안전까지 걱정될 정도”라고 털어놨다. 기관사들의 부주의는 승객의 안전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지난달 18일 부산 동래구에서 정류장을 출발하려던 시내버스의 뒷바퀴가 통째로 빠져 차량 2대를 들이받고 행인을 덮친 사고도 경영 합리화를 구실 삼은 지나친 정비 인력 감축의 결과라는 게 공공운수노조 측 주장이다. 인원이 부족하다 보니 문제가 드러난 차량을 정비하는 데에 급급하고, 사고를 줄이는 예방정비는 언감생심이다.
위험은 돌아온다
특히 시민의 생명ㆍ안전을 다루는 업종은 ‘경영 효율화’가 자칫 참사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지난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간접고용이 병원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비상 대처 능력이 없는데다 제대로 관리도 되지 않는 병원 하청 노동자인 이송직원이 메르스를 확산시킨 감염원이 됐기 때문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전염병 감염 사업장의 경우 하청 노동자들까지 내부 직원과 동등하게 검사 대상에 포함해야 질병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13년 1월 삼성전자 불산 누출이나 같은 해 5월 현대제철 가스 누출 사고 때처럼, 하청 노동자의 사망을 초래하고 유해화학물질이 주변에 퍼져 공동체 안전을 해치는 경우를 막으려면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위험 물질을 다루는 사업장은 도급을 원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노동계에선 나온다. 업무 도급 금지에서 나아가 금지 업종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생명ㆍ안전 업무 종사자는 직접 고용토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미 19대 국회에서 관련법이 발의된 적도 있다. 2014년 10월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이 발의했던 ‘생명안전 업무 종사자의 직접 고용 등에 관한 법률안’이다. 이 법은 철도ㆍ항공ㆍ운수사업 등 생명ㆍ안전 관련 업무는 외주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최근 하청 노동자 사망 사고가 잇따르자 정부도 안전 사고에 대한 원청업체의 책임을 하청업체 수준으로 강화하는 내용의 입법을 19대에 이어 20대 국회에서 재추진하기로 했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사업장에선 제3자에게 치명적인 피해가 야기될 가능성이 큰 만큼 외주화를 고용관계 측면에서만 봐선 안 된다”며 “규제 범위가 몇 만명 수준인 철도ㆍ지하철ㆍ항공 등 필수공익사업장부터 시범적으로 외주화를 금지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업무 비정규직 인력 활용을 제한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는데 시급히 이행해야 한다”며 “자기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시민 안전을 챙길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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