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으로 번진 ‘정운호 게이트’ 수사
검찰, 면세점 로비로 선 긋지만
정운호 수사 맡은 특수1부 아닌
방위사업수사부가 직접 압수수색
수사관도 100여명 동원 의미심장
정운호(51ㆍ수감 중)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로비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이 결국 롯데그룹 오너 일가를 향해 칼끝을 겨눴다. 2일 신영자(74)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두고 검찰은 ‘정 대표의 롯데면세점 입점 로비 의혹’에 한정된 수사라는 입장이지만, 새로운 비리 단서가 포착될 경우 그룹 전반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 동안 사정(司正) 무풍지대나 다름없었던 롯데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검찰의 1차적인 수사 목표는 신 이사장이 정 대표로부터 네이처리퍼블릭 매장의 롯데면세점 입점과 관련해 거액의 뒷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밝히는 것이다. 1970년대부터 호텔롯데와 롯데쇼핑 임원을 지낸 신 이사장은 2009년 12월부터 공식적으로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면세점 사업부문과 관련해 막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대표가 브로커 한모(58ㆍ구속기소)씨를 통해 신 이사장에게 로비를 시도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은 최근 정 대표와 한씨 등으로부터 “면세점 입점 대가로 총 15억원 정도를 신 이사장 측에 전달했다”는 취지의 진술도 확보했다. 검찰은 계좌추적을 통해 해당 진술의 신빙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최대 관심사는 검찰 수사가 면세점 입점 로비와 관련해 제한적으로 진행될지, 롯데그룹의 또 다른 비리 의혹을 파헤치는 수순으로 확대될지 여부다. 검찰은 이에 대해 “이 사건은 정 대표 로비 의혹 수사의 일환이며, (롯데그룹 전반에 대한) 추가 수사에 나설 단서는 갖고 있지 않다”고 선을 긋고 있다. 실제로 이날 압수수색 대상도 신 이사장 자택과 그의 아들의 자택 및 회사, 호텔롯데 면세사업부 등 ‘면세점 입점 로비’ 부분에 국한됐다.
그러나 여러 정황상 이런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힘들어 보인다. 현재 ‘정운호 게이트’ 수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이원석)가 맡고 있지만, 이날 압수수색은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부장 박찬호)가 나섰다. 애초 브로커 한씨의 군납 로비 사건을 살펴보던 방위사업수사부가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 수사를 시작했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지만, 정 대표 관련 사건을 수사 중인 특수1부에 사건을 넘기지 않았다는 점은 예사롭지 않다. 정 대표 수사와 무관하게 롯데그룹을 둘러싼 여러 비리 의혹만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이날 압수수색에 수사관이 100여명이나 동원된 점도 의미심장하다. 검찰 관계자는 “대기업 압수수색 기준으로 보면 많지 않은 숫자”라고 말했지만, 검찰 주변에서는 ‘또 다른 비리 단서를 찾고자 대규모 부대를 동원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롯데그룹 오너 일가는 2002~2003년 대검 중수부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 때를 제외하곤 본격적으로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적이 없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롯데는 공군의 반대로 번번이 가로막혔던 ‘제2롯데월드 신축’이 이명박(MB) 정부 시절 국방부가 관련 지침을 바꾸면서까지 길을 터줘 대표적인 ‘MB정부 특혜 기업’으로 꼽혔다. 이 때문에 롯데가 사정기관의 타깃이 될 것이란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고, 검찰도 롯데 관련 비리 첩보를 상당수 축적해 둔 것으로 전해졌다.
‘정운호 게이트’가 롯데그룹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로 번질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유는 최근 롯데그룹에 닥친 악재와도 관련이 있다.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과 관련해서 롯데마트 전ㆍ현직 임직원들도 사법처리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롯데홈쇼핑은 최근 6개월간 프라임타임 영업정지라는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특수부장 출신의 변호사는 “여론이나 시점상 검찰이 롯데그룹 수사를 확대해도 큰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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