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 시는 뜨거웠다.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 황인찬 ‘희지의 세계’(민음사), 심보선 ‘슬픔이 없는 십오 초’(문학과지성사) 등이 방송과 SNS에서 입소문을 타며 좋은 반응을 얻었고, 여기에 복간본 시집 열풍으로 김소월, 한용운 등 근대 시인들까지 불려 나오면서 이례적으로 시집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내렸다.
7일 서울 신촌 ‘카페 파스텔’ 한 켠에 문을 여는 시집 전문서점 ‘위트 앤 시니컬’은 이 열기를 몇 도 정도 올려놓을 듯 하다. 유희경 시인이 운영하는 이곳은 국내 시인들을 중심으로 외국 시인들의 시집까지, 오직 시집만 판다. 1일 아직 준비 중인 서점에서 시인을 만났다. 5단짜리 목재 서가엔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창비, 민음사에서 지금까지 출간된 시집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서점을 준비하면서 출판사들을 설득했어요. 대형 서점보다 시집을 더 많이 들여놓을 수 있으니 꽂아만 놓으라고. 대형서점에 시집이 많은 것 같지만 잘 보면 팔리는 시집만 갖다 놓거든요. 외국 시집도 200권 정도 주문했는데 다 들어오면 1,500권에서 2,000권 정도 될 겁니다.”
10년 넘게 문학출판사를 다니던 시인이 서점 주인으로 변신한 건 2년 전 왼쪽 눈의 시력에 이상이 생기면서다. 더 이상 편집일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시와 관련된 일을 구상하다가 우연히 음반사 파스텔뮤직의 대표와 연이 닿아 서점을 열게 됐다. 그가 세운 서점 운영 방침은 간단하다. 첫째 각 출판사의 시 전집을 들여 놓는 것, 둘째 낭독회를 정기적으로 열되 시인이 아닌 시 중심의 낭독회를 여는 것.
“제가 좋아하는 시집만 갖다 놓으면 독자들의 선택을 방해할 수도 있잖아요. 소외감을 느끼는 시인이 있을 수도 있고요. 다만 기획전 등을 통해 큐레이션을 할 순 있겠죠. 가령 한국 여성 시인들의 시집만 따로 모은다던가, 첫 시집 혹은 시인들 각자가 마음에 품은 나만의 시집을 보여준다든가.”
유희경 시인은 서가에서 김휘승 시인의 시집 ‘햇빛이 있다’(문학과지성사)를 꺼내 들었다. 책 뒤에 쓰여진 가격은 3,000원. 초판본이었다. “초판도 다 안 팔릴 정도로 대중성이 없었지만 시인들 중엔 이 시집을 아끼는 사람들이 몇몇 있어요. 저도 그렇고요. 이 시집을 중쇄하게 만드는 게 서점을 열면서 세운 목표 중 하나입니다.”
낭독회도 위트 앤 시니컬의 주요 콘텐츠다. 2일 김소연 시인이 첫 테이프를 끊는 낭독회는 9일 허연, 16일 박준, 23일 황인찬 시인으로 이어진다. 유희경 시인은 이들에게 시만 ‘줄창’ 읽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일부 시 낭독회가 팬 미팅처럼 진행되는 게 싫었어요. 시인이 늘어놓는 근황 보다는 시가 낭독회의 중심이 되면 좋겠어요.” 시인은 앞으로도 한 달에 두 번 정도 정례 낭독회를 가질 예정이다.
최근 시 열풍의 이유를 묻자 그는 “예나 지금이나 시가 돈이 되는 일은 없다”며 웃었다. “일부 시인의 약진으로 부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장은 그대로예요. 시집 1,000권을 팔면 240만원 정도 남는데 여기서 한 달에 1,000권이 팔리겠어요? 하지만 기분 좋은 착시입니다. 위트 앤 시니컬도 그 착시 안에서 살 수 밖에 없어요. 가장 돈 안 되는 시장에서 가장 돈 안 되는 일만 하는 것. 그게 위트 앤 시니컬이 사는 법인 것 같습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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