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프타운의 랜드마크인 ‘테이블마운틴’은 이름만큼 정직한 모양새다. 마치 칼로 산꼭대기를 반듯하게 자른 듯 정상이 평평한 테이블과 닮았다. 여행의 최대 변수는 날씨다. 남아공 여행객들이 인터넷 블로그에 올려 놓은 멋진 사진들처럼, 축구장 15배 크기의 테이블마운틴 정상에서 오색찬란한 케이프타운 시내 전경을 보리라 기대했지만, 날씨가 허락하지 않았다. 360도로 회전하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때만해도 화창했는데 정상에 오르자 갑자기 몰려든 구름이 전경을 가려버렸기 때문이다. 조금 더 있으면 구름이 정상을 덮을 태세, 아래서 보면 구름이 보자기처럼 감싼다고 해서 이런 풍경을 ‘테이블 보’ 현상이라고 표현한다.
케이프타운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 코스는 케이프포인트와 희망봉(Cape of Good Hope)이다. 테이블마운틴에서 희망봉까지는 대략 70km, 이동하는 동안 후트베이, 시몬스타운 등을 거친다. 후트베이는 아프리카 토산품을 판매하는 거리시장으로 유명한 곳, 싼 가격에 가장 아프리카적인 기념품을 구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시몬스타운 인근 볼더스비치에서는 아프리카 야생 펭귄을 만난다. 남극에만 있는 줄 알았던 펭귄들이 바로 눈앞에서 헤엄치고 뒤뚱거리며 해변을 거니는 모습에 여행객의 탄성이 끊이지 않는다.
볼더스비치에서 산정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광활한 평원을 지나면 드디어 희망봉이다. 이곳을 찾는 여행객도 그 이름처럼 작은 희망의 단서라도 발견하길 기대한다. 1497년 포르투갈의 항해사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로 가는 희망을 찾은 것처럼. 거세게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는 끝없이 가슴을 방망이질 하건만, 야속하게도 먹구름과 안개가 자욱한 하늘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파란 물감이라도 뿌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인생 여정도 언제나 맑고 화창한 날씨만 기대할 수만은 없지 않는가.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케이프타운으로 시내로 되돌아왔다.
이번엔 날씨와 상관없이 언제나 무지개 빛, ‘케이프타운 위의 마을’(Above cape town)이란 뜻의 보우캅(Bo-Kaap)을 찾았다. 테이블마운틴 바로 아래 형형색색의 페인트칠을 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네다. 지금은 웨딩 촬영을 비롯해 예쁜 사진을 찍으려는 여행자의 발길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곳이지만, 과거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의 슬픈 역사가 스민 곳이기도 하다. 보우캅은 케이프타운 도심에서 유일하게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에게 거주를 허용했던 곳이다. 눈부신 원색 컬러의 외벽은 무슬림이 주를 이뤘던 주민들이 백인 가정에서 쓰다 남은 페인트를 얻어와 칠하면서 비롯됐다. 이들이야말로 인종 차별의 설움 속에서 절실하게 자유와 희망을 그리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치안은 아쉬움…그럼에도 남아공은 최고의 여행지
남아공의 치안 문제는 여전히 아쉽다. 요하네스버그 공항에 도착해 휴대전화를 켜자마자 ‘여행자제 국가로 신변 안전 유의, 공항미행 강도, 국내서 화물 체크인 시 래핑(wrapping) 철저 요망’이라는 외교부의 주의문자가 쏟아졌다. 70랜드(약5,500원)을 주고 여행 가방을 랩으로 칭칭 감는 장면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남아공 제3의 도시 더반에서는 대낮에도 도심을 돌아다니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아프리카 최대 여행박람회인 ‘인다바(INDABA)2016’이 열리는 더반 국제회의장(ICC)에서 일행이 묵었던 호텔까지는 도보로 10분 거리. 웬만하면 걸어서 이동하려 했지만 호텔 직원은 택시를 타라고 충고했다. 무모한 용기를 발휘했다간 길거리 청년들에게 휴대폰과 카메라는 물론 신발까지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도 가고 거리를 거닐며 현지 문화와 주민들의 일상에 조금이라도 다가서고 싶은 여행자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다.
대신 호텔이 밀집해 있고, 항상 여행객들로 북적대는 해변은 경찰이 24시간 순찰하고 있어 안전지역으로 꼽힌다. 다른 도시도 관광지는 안전에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호텔과 체험 프로그램 등 관광인프라가 탄탄하고, 다양한 기후만큼 풍부한 자연 자원을 보유한 남아공은 치안문제만 해결한다면 여전히 세계 최고의 여행지임에 틀림없다.
더반ㆍ케이프타운(남아공)=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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