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안보군사 분야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미국의 국방예산은 5,810억 달러에 이른다. 2위 중국 1,294억 달러의 4배가 넘는 부동의 세계 1위다. 러시아는 700억 달러로 4위, 477억 달러 일본은 7위, 344억 달러 한국은 10위다. 6자회담 참가국 중 북한을 제외한 5자의 국방비 합계는 자그마치 8,625억 달러다.
그럼 북한은? 공식 자료에 의한 북한의 명목상 국방비는 남한의 3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직접 비교가 힘든 여러 요인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는 3분의 1 내지 4분의 1 정도는 된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6자회담 나머지 5자의 합산 국방비에 견주면 새 발의 피도 안된다. 국방예산만이 아니라 GDP, 인구규모 등 종합적인 국력으로 보면 북한이란 존재는 5자에 비해 사실상 아무 것도 아니다.
그렇게 막강한 국력과 군사력을 가진 5자가 지구상의 최빈국이자 대표적인 실패국가 하나를 통제하지 못해 절절 맨다. 5자가 힘을 모아 대응하면 북한쯤이야 충분히 어떻게 해볼 수 있을 터인데 힘을 못 모아서 탈이다. 이런 점에서 북핵 문제는 북한의 문제가 아니라 5자 협력체제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2003년 8월 어렵사리 북한을 끌어들여 6자회담을 가동한 이래 12년 간 5자의 관리 실패가 오늘의 북핵인 셈이다.
이제 그 북핵을 막기 위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체계를 도입하자고 한다. 그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미국은 냉전시대 상호보복억지의 토대인‘탄도탄요격미사일제한(ABM)’조약을 무력화한 뒤 미사일방어(MD)체제 구축을 본격화해 오고 있다. 이에 맞서 중국은 마하 10 이상의 극초음속활공(HGV) 미사일을 개발해 미국의 MD체제 무력화를 꾀하고 있다. 러시아도 미국의 MD를 회피할 수 있는 신형 대륙간탄도탄을 개발 중이다.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창과 방패의 경쟁은 끝이 없다. 완전한 방패 MD체제를 구축하려는 미국의 열망은 세계를 다시금 무한군비경쟁의 수렁으로 몰아넣는 형국이다. 한반도에서도 남한에 사드체계가 들어서면 북한은 이 방패를 뚫을 수 있는 새로운 창 개발에 골몰할 게 뻔하다. 더욱 정교한 핵무기와 운반수단 개발에 박차를 가할 뿐만 아니라 생화학무기 등 또 다른 결정적 공격수단을 마련하는 데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6자회담 같은 다자 해결노력은 더 이상 성립할 수 없다.
인구의 50%이상이 북 장사정포 사거리 내의 수도권에 밀집해 있는 상태에서 북한의 공격과 보복수단은 사실상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군사적 대결 트랙으로 가서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 그 끝은 항상 민족의 파멸로 이어지게 돼 있다. 사드 배치는 그 자체로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글로벌 차원의 MD체제 편입을 뜻하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한ㆍ미ㆍ일이, 다른 쪽에서는 북ㆍ중ㆍ러가 편 먹는 무한군비경쟁 소용돌이에 속절없이 빨려 드는 것이다.
무엇이 현명한 선택인지는 자명하다. 미국과 중국이 패권쟁탈을 위해 각각 북핵을 자신들의 군비 증강 빌미로 삼겠다는 내심을 갖고 있다면 우리의 선택지는 좁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핵무기를 비롯한 여러 북한문제들을 외교적으로 풀어가는 쪽으로 이끌 여지가 많아진다. 관련국들의 의지와 역량에 따라서는 북한을 관리통제하고 변화로 이끌어 낼 튼튼한 틀을 구축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천방지축 하던 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길들여졌다. 근두운(筋斗雲)을 타고 단숨에 10만8,000리를 난다는 손오공은 결국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천명(天命)에 순응했다. 김정은 체제가 놀아보고 싶다는 마당을 차려주되 일정한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게 해 결국 변화를 택할 수밖에 만들 수는 없을까. 군사력과 종합적 국력 면에서 압도적인 5자가 의기투합만 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박근혜 정부는 사드 도입을 놓고 좌고우면할 게 아니라 부처님 손바닥 판을 짜는 데 앞장서야 한다.
수석논설위원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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