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강ㆍ독서실비ㆍ스터디카페 등 곳곳에 ‘돈 먹는 하마’
토익시험은 기본에 전문자격증 등 갈수록 요구사항 늘어
길어지는 취업준비에 대부업 통해 고리대출 받기도
“1년 동안 토익(TOEIC) 응시료만 100만원이 들었어요.”
지난달 한 인턴기자에게 하소연을 듣고 과장이 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계산해보니 과장이 아니더군요. 요즘 시험 응시료가 토익 4만2,000원, 토익스피킹 7만7,000원입니다. 제가 한창 시험을 준비하던 10년 전보다 1만원 정도 올랐습니다. 그때는 스피킹 시험도 없었습니다. 토익 시험에 이 정도 비용이 들면 취업하기까지 과연 얼마나 돈이 필요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네요.
궁금증 해결을 위해 23~31세 취업준비생 73명을 대면, 전화, 설문 등의 방식으로 조사했습니다. 기준은 취업준비에 필요한 학원비, 독서실비, 각종 자격증 및 취업 시험 전형료, 교보재 구입비, 여기에 면접을 위한 정장 구입 및 미용비까지 포함시켰습니다. 식생활비, 어학연수 비용 등은 제외했습니다.
#간호사, 5개월, 403만원
지난해 말 간호사 시험에 합격한 25세 김 모씨는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한 5개월 동안 403만원을 지출했다. 서류 시험 통과를 위해 토익(40만원), OPIc(50만원), 토익스피킹(100만원), 한국사능력시험(30만원), 자격증 시험(40만원) 등에 260만원이 들었다. 필기시험(20만원)과 면접 준비(신체검사(80만원), 의상구입(30만원), 메이크업(5만원), 증명사진(8만원))에 나머지 143만원을 썼다. 김 씨는 “간호사가 되기 위해 한국사 점수까지 필요한 이유를 모르겠다”며 “갈수록 요구 사항이 늘어 그만큼 비용 지출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승무원, 4개월, 330만원
올해 초부터 승무원 시험을 준비한 25세 박 모씨. 승무원 지망생의 경우 직업 특성 상 면접 비용이 적지 않게 든다. 정장치마(7만원), 블라우스(4만원), 구두(8만원), 메이크업(6만5,000원)을 3회 받았다. 그리고 면접을 위해 남들이 하지 않는 직무 과외(30만원)를 받았다. 여기에 토익과 토익스피킹 시험에 90만원을 썼고 영어회화강의에 140만원을 지출했다. 박 씨는 “면접 과정에 필요한 직무 과외의 경우 입사 후 배워야 하는 교육까지 기업에서 준비생들에게 떠넘기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고고익선ㆍ다다익선’의 비애
취업 준비 과정은 곳곳에 ‘돈먹는 하마’가 도사리고 있다. 서류 전형을 준비하는 첫 번째 관문부터 그렇다. 준비생 입장에서는 제시할 수 있는 서류가 일단 많아야 한다. ‘다다익선(多多益善)’(자격증이 많을수록 유리), ‘고고익선(高高益善)’(점수가 높을수록 유리)이기 때문.
일부 준비생들은 기본에 속하는 토익의 경우 만점(990점)을 받을 때까지 1년에 12회 시험에 응시하기도 한다. 한 준비생은 “기업이 제시하는 커트라인을 넘겨도 좀 더 높은 점수를 받으면 유리할 것이란 생각에 ‘울며 겨자먹기’로 계속 시험을 본다”며 “유효기간이 2년 밖에 되지 않는 점도 계속 시험을 보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더구나 갈수록 요구하는 어학과 자격증이 늘고 있다. 공인영어시험인 텝스(TEPS)와 외국어 말하기평가 오픽(OPIc), 중국어시험 HSK, 한국어능력시험 등 각종 어학시험은 기본이며 컴퓨터활용능력, 워드, 파워포인트, 테셋(TESAT), 법학적성시험(LEET), 개인재무설계사(AFPK),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PEET), 한국사시험, 재무위험관리사(FRM) 등 직업에 따라 최소 2~3개의 자격증 시험에 매달려 살아간다.
필기시험과 면접준비 과정에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최 모씨는 “학원비, 독서실비, 책값으로만 1년 동안 500만원을 썼다”고 말했다.
학습 장소를 구하는 것도 부담이다. 언론사 준비생 이 모씨는 “1회 대여비가 4,000원인 스터디룸을 월 6회씩 1년 이상 이용하면서 총 38만4,000원을 썼다”고 말했다.
좋은 인상을 주려면 면접 준비에도 상당한 돈을 써야 한다. 준비생 윤 모씨는 “계절에 맞는 정장을 새로 구입하고 면접 때마다 메이크업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까닭에 취업 준비 과정은 ‘쩐의 전쟁’에 비유된다. 돈을 많이 쓰는 만큼 취업에걸리는 기간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는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송민정 연구원은 “일반 기업 취업의 경우 응시료만 30만원이 넘는 전문자격증 취득을 요구하는 추세”라며 “이를 피해 공무원시험을 준비해도 경쟁이 워낙 치열해 학원비나 생활비가 누적돼 가족에게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번창하는 취업 사교육..빚더미에 올라앉는 청년들
취업 준비 비용의 증가는 취업 관련 사교육 시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 3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취업을 위해 사교육을 받은 준비생이 28.4%였다. 이들은 평균 3개의 사교육을 받기 위해 총 358만원을 썼다. 월 평균 28만원이 든 셈인데, 설문 대상자들의 월 평균 생활비의 37%에 해당한다. 한 취업포털 관계자는 “인구 감소 등으로 수능 사교육 시장이 줄어드는 대신 취업 사교육 시장이 번창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자기소개서나 면접방법을 컨설팅 해주는 취업 전문학원도 급증하고 있다. 이런 학원들은 영어 면접 대비, 취업특강, 이미지컨설팅, 자기소개서 첨삭 등 분야별로 전문화되는 추세다. 한 준비생은 “졸업 후 2개월 동안 도전했는데 서류에서 계속 탈락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작성법을 배우기 위해 60만원을 들여 10회 정도 ‘코치’를 받았다”고 말했다.
취업 준비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서 금융권 대출을 받는 경우도 늘고 있다. 특히 대부업체 등에서 고금리 대출을 받기도 한다.
정부가 장려하는 정책금융상품인 미소금융의 경우 19~29세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연 4.5% 저금리로 대출을 해주지만 대출 한도가 300만원 이내다. 반면 제 2금융권은 이보다 훨씬 높은 이자에 더 많은 비용을 대출해 준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무직자 청년을 위해 최대 1,500만원까지 연 이자 15~27%로 무담보 대출을 해주겠다는 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
최근 저축은행에서 1,000만원 대출을 받은 한 준비생은 “아르바이트를 하면 그만큼 취업준비 시간을 빼앗기게 돼 백수 기간이 길어질 수 있어 대출을 받았다”며 “무직자인데도 별다른 심사 없이 큰 돈을 빌릴 수 있어 놀랐다”고 말했다.
문제는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 이자 부담이라는 또 다른 고통까지 안게 된다는 점이다. 자칫 잘못해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하면 신용불량자로 내몰릴 수도 있다. 정택수 경제정의실천연합 간사는 “학자금과 주거비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청년들이 취업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대출 문제 등 삼중고에 빠져들고 있다”며 “인턴 지원대책 같은 단기대책을 넘어 근본적인 일자리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ankookilbo.com
위은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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