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대표적인 석유 부국 베네수엘라가 저유가로 인한 경제 위기에 정치 불안까지 겹치며 국가적 재앙 사태에 직면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요구가 거세지는 가운데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강경 대응으로 버티고 있어 사회 혼란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30일(현지시간) 엘 나시오날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상공인연합회는 “원자재 부족으로 국내 산업의 85% 이상이 생산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원자재, 중간재, 부품 부족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공급 부족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덧붙였다. 실제 코카콜라가 설탕 공급업체의 재고 부족으로 베네수엘라 공장 가동을 중단했고, 최대 맥주기업 엠프레사스 폴라르SA도 맥아를 살 외환이 없어 생산을 멈췄다.
국민들은 생활고에 신음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국영 식료품점 앞마다 생필품을 사기 위한 시민들이 몇시간씩 긴 줄을 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식량을 구하지 못해 온 가족이 굶주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도 전했다. 하지만 정부도 재정 부족으로 전기를 아끼기 위해 관공서를 주2일만 운영하도록 하고, 일부 지역은 주1회만 수도를 공급하는 급수제를 실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생필품 부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이유는 당장 막대한 규모의 부채 상환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의 대외부채 규모는 약 1,200억달러(약 142조원)에 달하고 올해만 70억달러(약 8조원)를 갚아야 한다. 베네수엘라는 수출의 96%를 원유에 의존하고 있는데, 한때 배럴당 100달러이던 유가가 지난해부터 30달러 선으로 떨어지며 원유 수입의 90%를 부채 원리금 상환에 쓰는 형편이라고 영국 투자은행 바클레이스는 추정했다. 더구나 막대한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화폐를 찍어내고 있어 올해 물가 인상률은 500%, 내년에는 1,60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독일 최대 항공사 루프트한자가 베네수엘라 노선 운항을 포기한데다가 남미 최대 항공사 라탐(LATAM)항공이 베네수엘라 운항을 무기한 중단하며 국제적 고립 상태에 놓였다. 경제적 위기로 항공 수요가 감소한 탓도 있지만, “베네수엘라 정부가 달러 환전, 해외 송금 등을 통제하며 정상적인 영업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항공사들은 설명했다.
경제난이 가중되자 야권은 마두로 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한 국민소환투표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마두로 대통령은 최근 “정국 혼란과 외세 개입을 저지하겠다”며 국가비상사태를 선포, 사상 최대규모의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강경 대응을 펴고 있다. 이에 반발하는 야권과 시민들도 곳곳에서 시위로 대항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베네수엘라의 정치ㆍ경제 혼란에 따라 올해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 8%, 내년에는 마이너스 4.5%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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