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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신흥사, ‘임란 최초 승병 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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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신흥사, ‘임란 최초 승병 기병’

입력
2016.05.31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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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박산성, 쇠부리터, 철장 등과 스토리텔링으로 엮어 정신 되새겨야”

응진전 내 반자(板子), 보물 지정도…홍송재질에 단청, 문화재 가치 높아

신흥사 주지 묘경스님.
신흥사 주지 묘경스님.

통도사 말사인 울산 북구 신흥사(주지 묘경스님)가 임진왜란 발발 당시 전국 처음으로 승병이 봉기한 사찰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특히 사찰 측은 이런 주장의 국가인증을 위해 역사적 고증절차에 나서기로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와 함께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울산 북구 신흥사 인근 기박산성과 쇠부리터, 철장 등과 함께 신흥사 스님들을 포함한 울산의병의 활동 상황을 스토리텔링으로 엮어 울산을 ‘호국의 성지’로 부각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다.

31일 울산시와 북구, 신흥사 등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울산 신흥사에서 전국 최초로 스님들이 왜군을 격퇴하기 위해 분연히 봉기했지만 지금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며, 늦게나마 각종 문헌 자료와 고증 등을 통한 사실 입증을 거쳐 ‘호국사찰’로 숭고한 의미를 되새겨야 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울산시 등이 편찬한 각종 사료에 따르면 임진왜란 초인 1592년 4월 14일 왜적 1군 고니시(小西行長)가 부산진성을 함락시키고 군을 나눠 다대포진성과 서생포성을 점령했다. 이어 9일 뒤인 4월 23일 왜적 2군 가토(加藤淸正)가 울산읍성과 병영성을 함락시키자 울산 고을의 여러 의사들은 1,000여명의 의병을 모아 박봉수를 대장으로 삼아 신흥사가 있는 기박산성에서 봉기했다.

이에 신흥사는 같은 해 5월 15일 당시 주지였던 지운스님이 승병 100여명과 군량 300여석을 모아 기박산성으로 합류, 의병들과 힘을 합쳐 여러 전투에서 왜적을 상대로 싸워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한다.

한국불교의 성지라 할 수 있는 경주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신흥사는 임란 당시 사찰에 속했던 전답 등 부속토지가 수백만평에 달하고, 아랫마을인 울산 북구 대안동 일대 전체가 사하촌일 정도로 대찰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신흥사가 임란 당시 전국에서 처음으로 승병이 봉기한 호국사찰임을 입증하는 것이지만, 조선조와는 달리 현대에 와서는 사실과 의미가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

조선조의 경우 신흥사를 호국사찰로 크게 숭앙했다. 사료에는 “1998년 10월 19일 울산시 문화재자료 제9호로 지정된 신흥사는 임란 당시 건흥사라 불렸으며, 병화를 입어 소실된 것을 인조 24년(1646년) 경상좌도병마사 이급이 그 자리에 다시 세워 신흥사라고 하였다”고 적혀 있다.

향토사학자들은 경상좌도병마사가 나서 국가예산으로 신흥사를 중창했다는 것은 신흥사 승병들의 우국충정어린 봉기와 왜군격퇴 공로를 조선 조정이 인정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신흥사는 이와는 별개로 사찰 경내 옛 대웅전이었던 응진전(應眞殿) 반자(板子)에 대한 보물 지정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반자란 방이나 마루의 천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시설로 목재와 종이를 사용하지만 신흥사 응진전 반자는 홍송(紅松)을 이용해 가로, 세로 15㎝ 내외의 네모형식으로 일일이 짜 맞췄으며, 반자 마다 연꽃과 물고기 그림 등이 각각 다르게 단청된 게 특징이다. 특히 응진전 반자는 투박한 단청기법을 사용했고, 화려하지 않은 가운데 선이 부처님 손같이 부드럽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관련 자료는 부산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울산시와 북구, 신흥사 등은 지난 2013년 8월 응진전 반자에 대한 수리를 마쳐 보물지정 기본 조건은 갖춘 상태다. 보물 지정과 관련, 울산시와 북구 및 신흥사는 학술대회 등 통해 문화재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절차를 밟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한편 신흥사에 대한 임란 최초 승병 거병사찰 공인 및 응진전 반자 국가보물 지정 등을 위해서는 울산시와 북구는 물론 불교계의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신흥사 주지 묘경스님은 “불교가 억압받던 임란 당시 신흥사 스님들이 분연히 봉기, 왜적에 대항했으나 최초 기병 사찰이란 사실 자체가 잊어지고 있다”면서 “당시 울산지역의 호국항쟁 상황이 스토리텔링 등으로 널리 알려져 의미가 되새겨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창배 기자 kimcb@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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