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라는 국내 굴지의 자동차 회사가 있다. A사는 울산 지역의 한 자동차 정비업체와 자사 차량을 구입한 사람의 보증수리, 사전점검, 긴급봉사 업무 등에 관해 계약했다. 정비업체는 A사의 상호와 서비스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 받았고 대가로 매월 60만원의 마케팅 운영비를 지불했다. 1년 뒤 계약이 끝나고 A사는 계약 연장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 하지만 정비업체는 계속 A사의 서비스 상호를 썼고 종업원들은 A사의 영문 상호가 적힌 작업복을 입고 일했다. 다시 1년 뒤 정비업체는 A사의 상호는 없앴지만 ‘A사 OOO점’이라는 간판을 달고 영업을 계속했다. 이에 A사는 정비업체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2013년 2,000여 만 원의 배상금을 받아냈다. A사는 핵심 도면을 중국 업체에 유출한 직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적도 있다. 2011년 10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모두 실제 사례다. A사는 현대자동차다. 현대자동차는 소비자의 신뢰를 먹고 사는 국내 1위의 자동차 업체다. 직원이든 아니면 계약을 했던 정비업체든 자사에 손해를 끼친 행위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현대자동차를 모기업으로 하는 전북 현대 축구단이 ‘심판 매수’ 의혹에 휩싸였다. 2002년부터 전북 스카우터로 일해 온 차모씨가 2013년에 2명의 심판에게 100만씩 5번에 걸쳐 각각 200만원, 300만원을 건넨 혐의로 기소됐다. 축구단은 서둘러 ‘구단과는 무관하다. 스카우터 개인의 일탈이다’고 선을 긋고 나섰다. 배후가 의심되지만 증거는 없다. 검찰도 “차씨가 현금으로 돈을 건넸다. 현금에 꼬리표가 달린 것도 아니어서 추적이 힘들다”고 밝혔다. 이에 한 축구인은 “검찰이 아주 좋은 방법을 알려줬다. 다음부터는 심판에게 돈을 줄 일이 있으면 현금으로 주면 되는 것이냐”고 비꼬았다. 많은 사람들이 차씨의 단독 행위라는 해명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북은 2000년 중반만 해도 지방의 그저 그런 이류 구단이었다. 숙소는 열악했고 전용훈련장도 없는 떠돌이 신세였다. 모든 선수들이 가기 싫어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2009년 창단 첫 우승에 이어 2011년과 2014년, 2015년 정상에 서며 명문으로 발돋움했다. 2013년 문을 연 클럽하우스는 세계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시설을 자랑한다. 몇 천 명에 불과하던 평균 관중은 요즘 2만 명을 넘본다. 전주성(전주월드컵경기장 애칭)은 축구의 신흥 메카다.
하지만 차씨의 심판 매수로(구단은 무관하다는 해명이 사실이라는 가정 아래)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피땀 흘려 쌓아 올린 명문 이미지에 먹칠을 했고 신뢰도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로 인해 구단이 입은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몇 십억, 몇 백억으로도 계산하기 힘들다. 그러나 전북은 현재 스카우터 차씨의 직무만 정지해 놨다. 축구계 한 인사는 “이 정도 사안이면 당장 계약 해지는 물론 구단의 명예 실추에 대한 손해 배상을 요구해도 모자랄 판이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단은 자체 진상 조사를 통해 차씨가 심판에게 돈을 건넨 사실을 확인하고도 강력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재판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아서일까.
전북이 앞으로 차씨에게 어떤 형태로 법적인 책임을 물을 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번 사안의 진실을 가리는 데 중요한 대목 중 하나다.
윤태석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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