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건설업체나 백화점 등이 외제 승용차나, 아파트 등 수억원대 고가의 경품을 내거는 것이 가능해진다. 정부가 소비 진작 차원에서 2,000만원으로 묶여 있던 경품 가격 상한선을 풀어주기로 했기 때문인데, 소비가 잔뜩 위축된 최근 상황에서 업체간 고가 경품을 미끼로 내거는 과열 판촉 경쟁을 부추기는 조치라는 우려가 높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경품류 제공에 관한 불공정거래행위의 유형 및 기준 지정고시’(경품고시)를 폐지, 기업이 소비자에게 줄 수 있는 현상경품(추첨 등을 통한 지급 경품)의 한도를 없애기로 했다고 30일 밝혔다.
현재 고시는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추첨에 한해 판매가 기준으로 2,000만원을 초과하는 경품은 지급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경품 총액을 따져 행사 기간 동안의 상품 예상 매출액의 3%도 넘어서도 안 된다. 다만 상품 구매와 무관하게 방문 고객들에게 일괄적으로 응모권을 준 다음 추첨으로 경품을 지급(공개현상경품)하거나 상품 구매 대가로 가격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상품권 등(소비자경품)을 줄 때는 경품 가격에 제한이 없다.
앞으로 행정예고 등 의견 수렴 절차가 남아 있지만, 폐지가 최종 확정될 경우 경품고시는 1982년 제정된 이후 34년 만에 사라지게 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유통업체끼리의 경쟁이 활성화되는 것은 물론 경품 마케팅으로 소비자들에게 실질적인 가격 인하 효과와 함께 소비를 유도하는 긍정적인 측면을 모두 고려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향후 업계간 무분별한 경품 판촉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상당하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굳게 닫고 있는 상황에서 고가의 경품을 미끼로 내세우는 판촉 경쟁이 치열해질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불황일수록 영업을 위해 배보다 배꼽이 큰 고가의 경품을 내거는 이벤트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공정위는 지난 1999년 경품의 한도를 폐지했다가 아파트는 물론 상금 1억원을 경품으로 지급하는 업체가 나오는 등 과열이 일자, 20개월 만에 다시 한도를 100만원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출시될 당시 금융권에서 2,000만원 한도를 꽉 채운 세계여행 상품권이나 골드바, 승용차 등 고가의 경품을 내건 이벤트 경쟁이 불붙기도 했다.
문제는 이 같은 경쟁이 결국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경품 이벤트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경품의 가격 수준이 지금보다 높아지게 되고, 경품 가격이 판매 가격에 반영되면서 소비자가 고스란히 부담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품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도 벌어질 수밖에 없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규제를 푸는 것은 좋지만, 이로 인해 발생할 소비자들의 피해 구제 방안이 우선 마련됐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고시는 폐지가 되지만 지나치게 고가의 상품을 내걸어 시장 경쟁을 저해할 경우 기존 공정거래법으로 제재를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세종=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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