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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뜸했던 400년 역사 봉평장 ‘情’ 키워드로 되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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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뜸했던 400년 역사 봉평장 ‘情’ 키워드로 되살려

입력
2016.05.3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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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박을 대박으로 뻥뻥 튀겨낸 대박 맛있는 뻥튀기’란 미니간판을 단 가게 앞에서 한 상인이 활짝 웃고 있다. 현대카드 제공
‘쪽박을 대박으로 뻥뻥 튀겨낸 대박 맛있는 뻥튀기’란 미니간판을 단 가게 앞에서 한 상인이 활짝 웃고 있다. 현대카드 제공

강원도와 ‘활성화 프로젝트’ 진행

상점 스토리 표현한 간판 제작에

메밀 요리법 전수ㆍ환경 개선까지

제주 ‘가파도 프로젝트’도 눈길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된 봉평장은 5일장이 열리는 2ㆍ7일만 되면 사람들로 북적인다. 서울ㆍ인천 등 외지에서 온 사람도 적지 않다. 봉평장이 강원 평창군의 대표적인 관광 아이템으로 자리잡은 덕분이다.

이 지역 특산물인 메밀로 만든 메밀호떡, 메밀볶음면, 메밀피자는 봉평장의 별미로 자리잡았다. 메밀 씨앗을 담은 메밀 놀이주머니는 아이들이 꼭 챙겨가는 기념품 1순위가 됐다. 서울에서 찾아온 최만철(32)씨는 “시장이지만 상당히 깨끗한데다 무엇보다 물건에 원산지와 가격이 표시돼 있어 상당히 신뢰가 간다”며 “볼거리, 먹을거리가 다 갖춰져 있어 인사동 거리에 견줘 전혀 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세를 타긴 했지만 사실 봉평장의 역사는 400년이 훌쩍 넘는다. 장이 설 때마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봉평장은 1980년대 이후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명맥만 유지하던 봉평장에 다시 장돌뱅이들이 모여들고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한 건 3년 전부터다. 현대카드가 강원도와 손잡고 지난 2013년 3월부터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를 추진한 덕분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정겨움과 즐거움을 나누는 장(場)’이란 시장 본래의 기능을 되찾고, 고유의 전통과 색깔로 자체 경쟁력을 높여 시장과 지역사회를 활성화하기 위해 기획됐다. 봉평장이 지속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지키기 위한 개발’에 나선 것이다.

1년 간의 프로젝트 끝에 봉평장은 확 바뀌었다. 시내에서 볼 법한 현대화 시설을 갖춘 점포들이 들어선 건 아니다. 하지만 봉평장이 갖고 있던 특유의 색깔은 더 도드라졌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정부의 여러 전통시장 활성화 조치도 있었지만, 실제 사람들의 발길을 봉평장까지 닿게 하려면 다른 접근법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전통시장 활성화’라고 하면 대형마트를 염두에 둔 최신식 건물을 올리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우린 철저히 전통시장 고유의 특징을 살릴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카드는 정겨움을 나눌 수 있는 ‘정(情)’이란 키워드에 집중했다. 전통시장 하면 떠오르는 정겨움, 상인의 푸근함처럼 전통시장의 바탕이 되는 것들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고 본 것이다. 현대카드는 전통시장이 가진 스토리를 적극 활용했다. 봉평장에는 대를 이어 터줏대감을 자처하는 상회, 60년째 문을 열고 있는 이불가게 등 다양한 사연을 간직한 상인들이 있었다. 현대카드 사회공헌팀은 이런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1년간 114명의 상인들을 직접 만나 이들의 사연을 기록했다.

이들의 사연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한 건 현대카드 디자인팀의 몫이었다. 과일 찾아 전국일주를 하는 ‘원주청과’, 40년간 생선을 팔며 4남매를 키운 ‘미래생선’ 등의 미니간판은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또 특산물인 메밀을 활용해 특급호텔 출신 조리장들이 직접 개발한 호떡, 부꾸미, 피자 등의 요리법을 상인들에게 전수해 전통시장의 특색을 살리도록 했다. 메밀 씨앗을 담은 메밀 놀이주머니도 새롭게 만들어 시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기념품으로 나눠줬다.

과거 봉평장의 불편했던 환경도 손질했다. 시장 한 켠에 쌓여있던 지저분한 물건들은 치우고 물건을 진열하는 매대는 손님의 눈높이에 맞게 디자인했다. 고객이 편하게 물건을 고를 수 있도록 상품을 무릎 높이부터 허리 높이까지 진열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나물, 약초, 곡물 등은 작게 포장해 판다.

물건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헤맬 필요도 없다. 농산물, 수산물처럼 품목에 따라 천막 색깔이 5가지로 구분돼 있다. 청과는 녹색, 어물전은 파란색 천막을 쓰는 식이다. 상인들이 파는 물건엔 모두 원산지와 가격표를 붙이도록 했다. 또 봉평장 로고를 새긴 스티커를 상품마다 붙였다. 봉평장을 찾은 고객들에게 믿을 수 있는 상품이란 신뢰를 주기 위해서다.

봉평장이 확 바뀌면서 상인들의 만족도도 쑥 올라갔다. 현대카드에 따르면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봉평장의 매출은 이전보다 평균 30% 이상 상승했고 방문객도 30%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원도는 향후 봉평장을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의 본보기로 삼아 도내 전통시장으로 확대 적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비 오는 어느 날 시민들이 봉평장을 거닐고 있다. 현대카드 제공
비 오는 어느 날 시민들이 봉평장을 거닐고 있다. 현대카드 제공

현대카드는 요즘 제주도와 함게 ‘가파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봉평장 프로젝트처럼 또 다시 지키기 위한 개발에 나선 것이다. 빈집과 집터를 게스트하우스와 산책로로 만들 예정이다. 넓고 평탄한 가파도의 중심부엔 ‘별 관측소’를 설치할 예정이다. 제주 곳곳에는 제주의 고유한 대문양식인 ‘정주석’과 ‘정낭’을 모티브로 한 버스정류장을 설치하고 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사회공헌을 할 때 단순히 돈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게 무엇인지를 가장 많이 고민한다”며 “우리가 볼 때 낡고 오래된 걸 부수고 새로 짓는 식의 개발만이 정답은 아니다. 이번 프로젝트들을 통해 개발에 대한 새로운 답을 제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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