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대망론’에 불 지피고
어제는 안동서 민심 끌어안기
시민들 환영에 일일이 악수 인사
“류성룡 선생 투철한 조국 사랑…”
주목ㆍ적송 기념식수도 눈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방한 기간 대선 출마 선언만 하지 않았을 뿐 대권 도전 의지를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방한 첫날인 25일 대선 도전을 시사하는 발언을 쏟아낸 반 총장은 28일 김종필(JP) 전 총리를 만나 ‘충청 대망론’에 불을 지핀 데 이어 29일 경북 안동을 찾아 TK 민심을 끌어안는 행보를 노골적으로 선보였다. 대권 주자로서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며 ‘충청ㆍTK 연합’이란 대권 플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다.
반 총장은 29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16 국제 로터리 대회’ 행사에 참석한 뒤 헬기를 타고 곧바로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찾았다. 표면상으론 경주에서 열리는 유엔 비정부기구(NGO)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전에 들른 경유지였지만 의미는 남 달랐다. 한 정치권 인사는 “방한하자 마자 대선 출마를 시사한 뒤, 떠나기 전 충청권 맹주를 만나고 경북지역에서 머무는 것 자체가 잘 짜인 각본 같지 않느냐”고 말했다.
실제 이날 반 총장의 하회마을 방문은 TK지역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 낮 12시 50분께 하회마을에 등장한 반 총장은 태극기와 유엔기를 흔들며 “반기문”을 연호하고 “파이팅”을 외치는 시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서애 류성룡 선생의 국난 극복의 리더십을 부각시키는 데도 공을 들였다. 서애 선생의 친형인 겸암 류온룡의 고택을 둘러본 반 총장은 서애 선생의 고택인 충효당에서 김관용 경북지사 등과 오찬을 함께 했다. 반 총장은 “서애 선생은 조선 중기 재상을 하시면서, 아주 투철한 조국 사랑 마음을 갖고 어려운 국난을 헤쳐오신 분”이라며 “그 분의 나라사랑 정신, 투철한 공직자 정신을 기리면서 다 함께 나라의 발전을 위해 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방문했다”고 강조했다. 반 총장은 ‘대권 도전을 염두에 둔 발언이냐’는 질문에는 웃음만 지었다.
두 차례의 ‘식수(植樹)’ 도 눈길을 끌었다. 반 총장은 충효당에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1999년 방문 당시 심었던 나무 옆에 하회마을 측이 준비한 주목 나무를 심었다. 류왕근 하회마을 보존회 이사장은 “주목은 나무 중의 제왕”이라며 ‘반기문 대망론’을 우회적으로 띄웠다.
반 총장은 오찬 후 하회마을 인근의 경북도청 신청사를 찾아 경북 예천 백두대간 자락에서 가져왔다는 적송도 심었다. 방명록에는 “300만 (경북) 도민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 드린다”고 적었다. 경북도청 방문은 당초 일정에는 없었으나 김관용 지사의 거듭된 요청에 오찬 중간에 결정했다고 한다. 안동에서 2시간 넘게 머무른 반 총장은 경주로 이동해 자신의 숙소인 힐튼호텔 근처 우양 미술관에서 전시를 관람한 뒤 유엔 NGO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만찬사에서 반 총장은 “한국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것은 큰 추억이다”고 말한 뒤 '2030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달성을 위한 NGO 역할 등을 강조했을 뿐, 특별히 정치적 메시지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반 총장은 이 자리에서 경상북도 국회의원 수와 도의원 수 등에 대해 물어봤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이를 두고 반 총장이 여권의 텃밭인 TK지역의 정치지형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이 자리에는 김세연 의원과 김석기 김정재 당선인 등 영남권 여당 의원 3명이 참석했다. 이와 관련, 김정재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기회가 닿으면 국민 위해서 많은 일을 해달라’고 말씀을 건넸더니 웃기만 하셨다”고 말했다. 반 총장은 방한 마지막 날인 30일 조찬과 오찬은 특별한 외부 인사 초청 없이 유엔 실무진들과 함께 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반 총장은 전날 김종필 전 총리의 신당동 자택을 찾아 30분 간 배석자 없이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은 대화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정치권은 반 총장이 대선 출마를 시사한 뒤 충청 정치의 상징인 JP를 만난 것 자체가 충청 대망론의 교감을 나눈 것으로 보고 있다.
안동ㆍ경주=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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