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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전 美유학파가 수입품 가게 '남계양행' 열어

입력
2016.05.29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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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필방 건물은 원래 수입품을 취급하던 상점 '남계양행'이었다. 안창모 제공
동헌필방 건물은 원래 수입품을 취급하던 상점 '남계양행'이었다. 안창모 제공

서울 인사동을 지켜낸 시민들은 인사동 이상을 지켜냈다. 인사동은 오늘의 역사도시 서울을 지켜낸 가시적 성과일 뿐 아니라 역사를 품은 도시가 어떠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지 보여준다. 그래서 인사동은 역사를 내세우는 모든 도시가 벤치마킹하는 곳이 되었다.

그런 인사동에서 지난 10여 년간 요동쳤던 도시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 있다. ‘동헌필방’이 위치한 공평동 9번지 건물에는 서울시 미래유산 패가 붙어있다. 그러나 건물 자체가 미래유산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미래유산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세 들어 있는 동헌필방이다. 1966년 이동하가 창업한 동헌필방은 현재까지 50년 동안 문구점인 필방으로 운영되고 있다.

동헌필방을 들어서면 가게를 가득 채운 문방사우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동헌필방의 연혁을 궁금해 하는 필자를 위해 기꺼이 자리를 내주고, 자신이 지내온 삶의 단편을 이야기하는 주인어른의 모습에는 인사동을 지켜온 자부심이 짙게 배어 있었다. 가게 안을 둘러보다 ‘東軒筆房(동헌필방)’이라는 제호가 눈에 들어왔다. 화가이면서도 한학과 서예에 조예가 깊은 윤산 강행원의 글씨라고 한다. 필방 주인이 오랜 세월 한 우물을 지켜온 터인지라 자신의 길에서 족적을 남긴 이들이 변함없이 이곳을 찾고 있다. 동헌필방은 단순히 문방사우를 취급하는 가게가 아닌 예인들이 소통하는 현장인 것이다.

지난 50년 동안 변함없이 문구점으로 운영돼 온 동현필방의 내부는 문방사우로 가득 차 있다. 안창모 제공
지난 50년 동안 변함없이 문구점으로 운영돼 온 동현필방의 내부는 문방사우로 가득 차 있다. 안창모 제공

동헌필방이 세 들어 있는 건물의 시작은 수입품을 취급하던 가게, 남계양행이었다. 1934년 미국 시카고 루이스대학에서 경제를 공부하고 돌아온 윤치창은 처남인 손원일과 함께 남계양행을 시작했다. 남계(南桂)는 윤치호의 이복동생인 윤치창의 호였고, 양행(洋行)은 서양가게를 의미한다. 양행은 다른 의미로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도전을 뜻하기도 했다. 양행이라는 상호명은 서양세계를 향한 새로운 도전의 의미를 갖고 있었던 셈이다. 윤치창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던 손원일이 해방 후 한국 해군의 아버지가 되었으니, 적어도 윤치창의 동업자는 불모의 땅에서 새로운 세계를 일궜다고 할 것이다. 남계 역시 양행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듯 하다. 해방된 조국에서 윤치창은 외교관으로 세계를 누볐다. 동헌필방 건물은 그렇게 탄생했다.

수입품을 취급하는 가게이니 붉은 벽돌집을 짓는 것은 윤치창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건물 모서리의 지붕에는 작은 박공(‘八’자 형으로 붙인 건축 부재)이 있고, 박공에는 다락방 채광을 위한 작은 창도 설치되어 있다. 이 모습은 NH농협빌딩과 함께 안국동길에서 이국적 모습을 형성하고 있다. 언제 등록문화재가 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독특한 붉은 벽돌 상가다. 구 남계양행 건물이 등록문화재가 되어, 이미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 삶과 역사를 증거하고 있는 동헌필방과 함께 ‘미래유산’이면서 동시에 ‘등록문화재’가 되는 첫 근대문화유산이 되기를 희망한다.

안창모 경기대대학원 건축설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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