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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건축전 한국관 개발광풍에 휘말린 한국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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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건축전 한국관 개발광풍에 휘말린 한국의 자화상

입력
2016.05.29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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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개관한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앞에 관람객들이 몰려 있다. 한국관은 '용적률'을 주제로 지난 50년간 한국 건축의 변화상을 짚었다. 베네치아=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26일 개관한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앞에 관람객들이 몰려 있다. 한국관은 '용적률'을 주제로 지난 50년간 한국 건축의 변화상을 짚었다. 베네치아=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서민 주택에 건축가들이 뛰어들었다는 건 건축이 중산층의 삶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는 신호이자, 한국 건축이 양의 게임에서 질의 게임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김성홍 한국관 총감독)

26일 개관한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은 한 편의 르포를 보는 듯 했다. 전시장에는 소위 집장사들이 만든 판에 박은 듯한 다세대, 다가구 주택의 사진이 빼곡하게 걸렸다. 누더기 기우듯 옥탑방과 베란다를 불법 증축ㆍ확장한 모습은 개발 광풍에 휘말렸던 한국 사회의 그로테스크한 자화상이자, 서민의 주거보다는 기념비적 건물이나 대형 건축에만 몰두해온 한국 건축계의 자성의 목소리다.

제15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전경. 지난 50년 간 한국의 도시 풍경을 바꾼 용적률 싸움을 보여주기 위해 서울의 건물 60여만동을 전수 조사하고 72개의 건축 모형을 만들어 배치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제15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전경. 지난 50년 간 한국의 도시 풍경을 바꾼 용적률 싸움을 보여주기 위해 서울의 건물 60여만동을 전수 조사하고 72개의 건축 모형을 만들어 배치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한국관 총감독인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와 5인의 공동 큐레이터인 신은기(인천대 조교수) 안기현(한양대 교수) 김승범(VW랩 대표) 정이삭(에이코랩 대표) 정다은(코아아키텍츠 팀장)이 내세운 주제는 ‘용적률’이다. 2016년 프리츠커상 수상자이자 제15회 베니스건축전 총감독을 맡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가 제시한 주제 ‘전선에서 알리다’(Reporting From the Front)에 대한 한국의 답변인 셈이다.

아라베나 감독은 건축의 궁극적 목적이 미적 성취가 아닌 삶의 질 향상임을 상기시키며 각국의 건축가들이 이를 위해 어떻게 싸우고 있는가를 물었다. 다른 국가들이 경제위기 후 버려진 건물, 난민 문제, 자원 고갈에 대해 건축적 해답을 고민하는 동안 한국은 용적률 싸움을 조명했다. 좁아터진 국토에서 조금이라도 면적을 확보하고자 하는 집주인과 이들의 욕구에 충실하게 반응해 때론 불법도 불사했던 집장사들, 그리고 이를 통제하는 법과 제도, 이 3자의 게임이 지난 50년간 한국의 도시 풍경을 사실상 결정지었다는 것이다.

한국관 전시 총감독을 맡은 김성홍(오른쪽에서 두 번째) 서울시립대 교수와 공동 큐레이터들. 왼쪽부터 김승범 VW랩 대표, 안기현 한양대 교수, 신은기 인천대 교수, 정다은 코어건축 팀장, 정이삭 에이코랩 대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한국관 전시 총감독을 맡은 김성홍(오른쪽에서 두 번째) 서울시립대 교수와 공동 큐레이터들. 왼쪽부터 김승범 VW랩 대표, 안기현 한양대 교수, 신은기 인천대 교수, 정다은 코어건축 팀장, 정이삭 에이코랩 대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김 감독과 큐레이터들은 이를 고발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가 최근의 변화상에 주목했다. 전시관 중앙에 놓인, 2010년 이후 서울에 지은 36채의 건물 모형이 그것이다. 김 감독은 “2008년 금융위기 후 부동산 불패신화가 깨지면서 대형 건축이 붕괴하고 일자리를 잃은 젊은 건축가들이 다세대, 다가구 등 중간 건축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며 “지금 한국의 건축가들은 집장사, 시공사들과 경쟁하며 건축주가 원하는 만큼 용적률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건축의 조형미와 도시경관까지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시된 모형 중 2012년 논현동에 지어진 원룸건물 테트리스 하우스는 문주호 등 4명의 젊은 건축가가 다가구와 원룸이 밀집한 지역에서 최대 용적률을 뽑아내려 한 사투를 잘 보여준다. 이들은 113.3㎡(37평)의 손바닥만한 대지 위에 사선 제한으로 건물 한쪽이 깎이는 제약 속에서도 각 실을 복층으로 구성, 테트리스처럼 끼워 맞춰 용적률을 199.88%까지 끌어냈다. 내부적으로는 문을 열었을 때 침대가 바로 보이지 않게 하는 구조로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외부적으로는 각 실의 색깔을 달리해 개성 있는 외관을 완성했다.

건축 모형 외에도 다가구 주택을 먹으로 세밀하게 표현한 강성은 작가의 그림, 불법 증축한 주택들을 3년 간 찍어온 백승우 작가의 사진, 쇠락한 서민 주거지를 콜라주 기법으로 영상화한 정연두 작가의 작품이 전시장 한 켠에서 관람객들을 맞았다.

개별 건축물의 아름다움보다 건축계의 치열한 ‘먹고사니즘’을 정직하게 조명한 이번 전시에 국내외의 관심이 이어졌다. 개막식 당일에는 승효상, 배형민, 조민석 등 국내 건축가들을 비롯해 2006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총감독이었던 리키 버뎃 런던 정경대 교수, 세계적인 건축디자인컨설팅회사 프론트의 마크 시몬스 대표, 영국 옵서버지의 건축평론가 로안 무어, 미국 프린스턴 건축대학장을 역임한 알레한드로 자에라 폴로,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건축학과 첫 여성 학과장이자 한국계 미국인 건축가 윤미진 교수 등이 참석했다.

승효상 건축가(이로재)는 “근래 한국 건축이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발언한 사례가 거의 없었는데 건축가들이 스스로를 공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사회에 적극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한 전시라고 본다”면서 “단순한 고발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의 나갈 방향을 제시해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관 전시는 베니스비엔날레가 막을 내리는 11월 27일까지 이어진다. 올해 한국관 커미셔너를 맡은 박명진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은 “한국관이 2014년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데 이어 올해는 뉴욕타임스로부터 주목해야 할 6개의 국가관 중 하나로 선정됐다”며 “본 전시에도 최재은 작가가 초청돼 한국 현대건축의 다양하고 역동적인 모습을 세계무대에 보여줄 수 있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베네치아=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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