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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의 길 위의 이야기] 관성의 법칙

입력
2016.05.2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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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를 가정으로 배달하는 한 사람을 알게 된 지 이십오 년쯤 되었다. 내가 이 동네로 막 이사와 처음 살던 집에서 알았으니 참으로 긴 세월이다. 우리는 어느 기간엔 서로 열심히 인사를 주고받지만, 어느 기간엔 나만 열심히 인사를 해 무안해지곤 한다. 오늘 아침 마주쳤을 때 인사를 건네는 나를 그녀는 차갑게 외면하며 지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다시는 인사하지 말아야지!’ 했지만, 아마도 나는 다시 무안해지고 나서야 습관을 탓하며 쓰게 웃을 것이다. 한동안 받아 마시던 우유를 끊은 것은 사소한 일 때문이었다. 그녀가 화장실 창틀 위에다 올려놓았다는 우유를 날마다 찾아 헤매던 나는 어느 날 그녀에게 배달을 자주 빠뜨린다며 딱딱거렸다. 그녀는 “분명히 우유를 창틀에 올려놓았고, 없어졌다면 변기에 떨어져 정화조 속으로 빠져버렸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내 생각으론 우유가 변기에 걸리지 않고 정화조 속으로 내려갔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 무렵 나는 밤낮을 거꾸로 살았기 때문에 창문을 여는 소리를 듣지 못했을 리도 없었다. 그런 내 주장에 그녀는 몹시 불쾌감을 나타냈고, 우유 배달은 중단되었다. 그 뒤 우리는 가끔 인사를 주고받기도 하는데, 대체로 그녀의 고객이 나와 같이 다닐 때이다.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네는 그녀는 늘 너그러워 보였고, 그때마다 나는 늘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꼈다. 인연이란 때로 구절양장처럼 느껴진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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