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가 온라인 세계를 망치고 있습니다. 모두를 위한 공간인 인터넷을 되찾기 위해 공동의 노력이 절실합니다.”
한국 사회가 ‘강남역 살인사건’에 따른 여성혐오 논쟁에 휩싸인 가운데 지구 반대편 영국에서도 여성혐오를 물리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영국 노동당 소속 정치경력 26년의 이베트 쿠퍼 하원의원이 지난해 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인터넷 공간에 여성 공격성 발언이 난무하다는 문제 의식으로 시작한 ‘인터넷을 되찾자(Reclaim the Internet)’ 운동에 런던 정치인들이 속속 동참하면서다. 특히 최근 SNS 상 여성혐오가 심각하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면서 운동은 집중적으로 재조명 받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5일(현지시간) 쿠퍼 의원의 운동을 소개하며 인터넷 공간에서 여성혐오 기반의 공격이 심각한 수준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진보 성향의 싱크탱크 데모스의 최신 조사 결과를 인용해 매주 영국 여성 2,000여명이 SNS 상에서 혐오 공격의 표적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데모스가 4월 말부터 약 3주간의 트위터 글을 분석한 결과 영국 내 ‘걸레’‘창녀’ 등 여성 비하 표현이 담긴 게시글이 150만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공격 의도로 사용된 경우만 추려도 1만여개에 피해자는 총 6,500여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전세계로 범위를 넓힐 시 피해자는 8만여명에 달했다.
이에 리클레임더인터넷 운동은 본격적인 출범을 알리고 나섰다. 리클레임더인터넷은 해시태그(#ReclaimTheInternet) 운동을 통해 SNS 사용자들에게 여성혐오 문제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뿐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적 제언까지 목표로 하고 있다. 데모스와 여성인권단체 포셋 소사이어티, 여성폭력근절연합(EVAW) 등 시민단체들에 이어 마리아 밀러(보수당) 하원의원(전 문화부 장관), 조 스윈슨(자유민주당) 전 하원의원 등 당파를 불문한 여성 정치인들이 가세해 온오프라인에서 포럼을 주최한다. 참여자들은 페이스북ㆍ트위터와 같은 SNS 플랫폼 기업들의 책임, 검ㆍ경의 역할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캠페인을 주도하는 쿠퍼 의원은 리클레임더인터넷 운동이 수십년간 이어져 온 여성 운동의 일환임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 운동의 명칭은 1970년대 말 유럽을 휩쓴 ‘리클레임 더 나잇(밤을 되찾자)’ 운동에서 따온 말이다. 77년 영국 리즈 지역에서 13명의 여성이 희생된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나자 전국적으로 리클레임더나잇 행진이 펼쳐졌고 벨기에, 이탈리아 등에서도 ‘밤에도 폭력과 추행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는 여성들이 거리로 나왔다. 쿠퍼 의원은 이 운동을 언급하며 “40년 전 여성들이 길 위에서 (여성혐오에 맞서) 싸웠다면 오늘날 우리의 길이자 공공장소는 인터넷이다”라고 강조했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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