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방문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나러 갈 생각이었는데 28일이 아들의 11주기 추모제라서 못 갔습니다. 형률이 생전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히로시마 원폭2세 피해자 김형률씨의 아버지 김봉대(80)씨의 말이다.
오는 28일은 2005년 5월 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히로시마 원폭2세 피해자 형률씨의 11주기 추모제가 열리는 날이다. 형률씨의 아버지 김씨는 아들의 생전모습에 대해 “폐기능이 75%나 망가진 상태에서도 부단히 뛰어다녔다”고 회상했다.
3년이었다. 형률씨는 2002년 3월 기자회견을 열고 공개적으로 자신이 원폭2세 환우라는 것을 밝혔고 병마로 고통스런 와중에도 2005년까지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한국원폭2세환우회, 지원모임, 공동대책위 등이 잇따라 결성됐다. 2005년 1~2월에는 외교부가 공개한 ‘한국인 원폭피해자 구호 1974’(보건복지부가 1974년 원폭2세 피해자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내용의 문서)를 바탕으로 국회의견청원서를 작성했고, 국가인권위의 원폭1~2세대 실태조사 결과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형률씨의 병명은 ‘선천성면역글로불린결핍증’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히로시마 원폭 1세대 피해자였고 그 피해는 형률씨에게도 물려졌다. 아버지 김씨는 “1950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될 당시 아내는 6살이었다”며 “아내는 같은 해 말 귀국해 가족과 함께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왔다”고 말했다.
11주기를 맞은 올해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됐지만 김씨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씨는 “껍데기만 통과됐고 피해자들의 정신건강이나 건강상태를 조사하고 실질적인 보상을 하는 알맹이는 모두 빠졌다”며 “아들은 떠났지만 나라도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형률 추모사업회와 부산민주공원은 오는 28일 오전 11시부터 부산민주공원 소극장에서 고 김형률씨의 11주기 추모제를 개최한다. 국내 시민ㆍ평화활동가와 일본 평화활동가 등이 참석하는 이날 행사에는 아버지 김씨가 유족대표로 인사를 전할 예정이다. 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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