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부터 맞춤형 보육 시행
전업주부는 자기 기술서 내고
지자체장 승인 얻어야 이용 가능
이혼 유무ㆍ장애ㆍ질병 등
민감한 정보 공개 싫으면 포기
가정사 모두 서류 제출도 문제
경기 광명에 사는 주부 이모(32)씨는 올해 3월 두 돌이 된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출산ㆍ육아로 3년간 접어뒀던 일본어 번역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프리랜서 번역가로 데뷔할 수 있는 중요한 공모전이 곧 있어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는 공부에 매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7월부터 전업주부 자녀는 어린이집을 맞벌이(12시간)의 절반인 6시간(오전 9시~오후 3시)만 이용하도록 하는 맞춤형(반일제) 보육이 시행되면서 걱정이 태산이다.
구직급여 수급자나 직업훈련 과정 참여자가 아닌 이씨가 종일제를 이용하려면 자신이 왜 종일제 이용이 필요한지 적은 ‘자기 기술서’를 동주민센터에 내고 지자체장 승인을 얻어야만 한다. 이씨는 25일 “아직 번역가가 된 것도 아닌데 외부에 내 개인적인 일을 알리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며 “정부가 종일제 돌봄이 필요한 가정은 누구나 이용하게 해준다고 했지만, 결국 가정사나 개인의 민감한 정보 공개가 불편한 엄마들은 포기하는 가정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7월부터 어린이집 맞춤형 보육 시행을 앞두고 엄마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종일제를 이용하려면 예민한 가정사를 낱낱이 공개해야 되는 데다, 보육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크기 때문이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는 한 주부는 인터넷 육아카페에서 “정부가 구구절절 사유서(자기 기술서)를 쓰라고 하는데 왜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나 싶다”며 “맞춤형보육은 전업주부를 구걸하게 만드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허위 서류 제출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것 역시 부모들에게 지나치게 겁을 주는 것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또 어린이집을 하루 종일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혼 유무, 장애나 질병 등 가정의 사정을 모두 서류로 제출해야 하는 규정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예컨대 장애로 인정을 받으려면 아동의 부모나 형제가 신체적ㆍ정신적 장애가 있음을 증명하는 장애인등록증을 내야하고, 다른 가족 간병을 할 경우 의사진단서를 내야 한다. 또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 영세사업장 취업자, 아르바이트생, 취업준비, 법적 부부지만 사실상 이혼상태 등 서류로 증명할 수 없을 경우에는 자기기술서를 쓰고 지자체 승인을 얻어야 한다. 실제로 복지부가 지난해 7~9월 제주 서귀포시, 경북 김천시, 경기 가평군 3곳에서 맞춤형 보육 시범사업을 했을 때도 어린이집에 관련 서류를 내 집안 사정을 공개하는 데 대한 불만이 많았다.
맞춤형 이용 아동의 보육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맞춤형은 종일제 보육료의 80%만 지급되기 때문에 어린이집의 경영 악화로 아이들 식재료 등이 부실해지고, 보육교사의 처우도 나빠져 돌봄이 소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맞춤형 아동은 3시쯤 먹는 오후 간식을 주지 않는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경기 용인에서 12개월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주부 신모(33)씨는 “3시에 데려오면 낮잠 자는 아이를 업고 와야 하고, 오후 간식도 못 먹게 된다고 들었다”며 “엄마가 전업주부라는 이유로 아이 돌봄이 부실해질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종일제 이용을 위한 증빙자료 제출은 복지 급여를 신청하기 위한 과정으로, 업무적으로 처리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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