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말 만기 1,000억 유동성 마련 못해 부도 위기
채권단, 손실 무릅쓰고 지원 중단 결정
“실물경제ㆍ금융권에 미치는 타격 상당할 것”
국내 조선업의 황금기이던 2000년대 후반 수주잔량 기준으로 세계 4위 조선소로 우뚝 섰던 STX조선해양이 결국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라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면서 거센 후폭풍이 일고 있다. 국책은행들은 최소 2조원의 추가 손실을 떠안아야 할 처지가 됐고, STX 계열사들까지 줄도산을 맞을 가능성이 커진 상태다.
25일 STX조선의 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삼일회계법인에 의뢰한 실사 결과에 따르면, STX조선은 엿새 뒤인 5월 31일까지 결제해야 하는 자금 1,000억여원을 자체 능력으로 막을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채권단이 유동성 지원에 나서면 당장 부도는 막을 수 있지만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은 지원 대신 법정관리라는 극약 처방을 택했다. 역대 최악 수준인 조선업황과 STX조선의 부실한 재무구조를 감안하면 더는 지속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이다. STX조선은 지난해 말 이후 신규 수주를 한 건도 유치하지 못하면서 일감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시설유지비, 인건비 등 고정비가 커 앞으로도 흑자로 돌아설 길이 요원하다는 것이다. 또 STX조선이 다른 조선사와 경쟁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수주한 선박의 계약 취소가 발생하며 우발 채무 역시 급증하고 있다고 산업은행은 밝혔다.
STX조선 몰락에는 전세계적인 조선 업황 악화, 그리고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가 원인이 됐다. 2001년 강덕수 전 회장의 STX그룹이 1967년 설립된 동양조선공업을 인수하며 탄생한 STX조선은 2008년 수주 잔량 기준으로 국내 ‘빅3’조선소(현대중공업ㆍ대우조선해양ㆍ삼성중공업)에 이어 세계 4위까지 올랐다. 이후 2010년대부터 세계 조선업황이 서서히 꺾이기 시작했지만, STX조선은 3조5,000억원 들여 STX대련과 STX유럽을 인수하는 등 덩치 키우기와 무리한 저가 수주 경쟁을 이어갔다. 그 결과 STX는 적자의 늪에 빠져들었고 2013년 4월 산업은행 등 채권은행에 자율협약을 신청했다. 그 와중에 ‘샐러리맨 신화’를 써가던 강 전 회장은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구속 수감되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국책은행 중심의 채권단은 STX조선에 신규 자금 4조5,000억원을 투입하고 2조원은 출자 전환, 남은 채권 4조원은 2017년까지 상환을 유예하는 내용의 정상화 방안을 마련했다. 반면 우리ㆍ신한ㆍKEB하나 은행 등 시중은행들은 STX조선의 회생 여지가 없다고 판단,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 산업은행은 당시 “국가경제적 충격을 최소화 하기 위해 자율협약 추진이 불가피했다”고 밝혔지만, 이번에 법정관리를 택함으로써 당시의 판단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됐다.
STX조선이 법정관리로 보내질 경우 금융권과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의 추가 손실은 2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산업은행(여신 규모 3조원) 수출입은행(1조1,000억원) 농협은행(1조원) 등 국책ㆍ특수은행들의 예상 손실이 특히 크다. 우리ㆍ신한ㆍKEB하나은행 역시 총 9,000억원의 여신 중 청산가치만큼만 돌려 받게 되며, 회사채 등 비협약 채권(약 2,000억원)역시 휴지조각이 될 공산이 크다. 채권단은 STX조선이 법정관리 과정에서 청산될 가능성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계열사들의 줄도산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 채권단의 자율협약을 받고 있는 STX엔진, STX중공업, ㈜STX 등 관계사 중 최소 두세곳은 법정관리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들 업체에 납품을 하는 협력업체 수만 1,600여개에 달한다. STX조선의 직ㆍ간접고용 근로자 6,700여명도 앞으로 일자리를 잃게 될 가능성이 높으며, 특히 조선소 의존도가 큰 지역경제(경남 창원)의 타격 역시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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