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저게 태산인가요?”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맞습니다”라는 가이드의 명쾌한 대답에 슬며시 맥이 빠진다. 전날 밤 늦게 타이안(泰安)시에 도착해 주변을 살피지 못했는데, 아침 일찍 호텔에서 본 타이산(泰山)의 첫인상은 실망스러웠다. 해발 1,545m, 이름만큼 높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중국 5악 중 으뜸’, ‘중국인들이 생전에 꼭 오르고 싶어하는 산’이라는 자랑이 쉽게 와 닿지 않을 정도로 평범해 보였다. 솔직히 강원도 고성의 미시령터널 앞에서 보는 설악산 울산바위 능선이 훨씬 늠름하고 압도적이다(라고 생각했다). 부슬비가 오락가락하는 중에 예정대로 타이산으로 출발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조선시대 문인 양사언(1517~1584년)의 시 하나로 타이산은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지명이다. 양사언이 타이산을 올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말하는 태산은 당연히 물리적 높이라기보다 넘기 어려울 만큼 높고 큰 심리적 극복 대상이다.
큰 맘먹고 등반을 계획한 이들이 아니라면 관광객에게 타이산은 이제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어렵지 않은 산이다. 입구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중턱까지 오르고, 다시 케이블카를 타면 정상으로 연결된 능선에 닿는다. 정상까지는 30분만 걸으면 충분하다.
셔틀버스가 출발하는 타이산 남측 입구 광장에 이르자 희미하게 안개 낀 바위산이 조금 전보다는 좀 더 커졌다. 표를 끊고 30명이 타는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다. 타이산 중턱 중톈먼(中天門)까지 약 20분이 걸린다. 도로에서 띄엄띄엄 만나는 주민들은 대부분 대형 물통을 메거나 끌고 걷는다. 약수를 뜨는 것이 목적인 듯하다. 그때마다 운전기사는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린다. 시멘트 포장이 잘 돼 있지만 계곡을 꼬불꼬불 돌아 오르는 길, 스릴이라 하기엔 위협을 느낄 정도로 커브에서도 속도를 별로 줄이지 않는다.
도로 양편으로 빼곡한 아까시(아카시아)나무의 달콤한 꽃 향기가 그나마 긴장감을 녹인다. 왕성한 번식력과 끈질긴 생명력으로 숲을 망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기피하는 아까시나무가 똑같은 이유로 이곳에선 오히려 대접받는다는 게 가이드의 설명이다.
버스에서 내리자 형체라도 보였던 봉우리가 완전히 구름 속에 묻혔다. 빗줄기도 조금 더 잦아졌다. 케이블카에 올랐을 땐 바로 뒤의 차량도 보이지 않을 만큼 시계가 좁아졌다. 말 그대로 ‘갈수록 태산’이다. 그래도 정상은 다를 거라는, 수도 없이 타이산을 올랐다는 가이드의 말에 희망을 걸 수 밖에 없었다. 짙은 구름 속에서 케이블카를 탄 지 10여분, 상부 정류장에 도달하기 전 마지막 계곡을 가로지를 때 오른편으로 느닷없이 바위능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끝없이 이어진 계단 꼭대기에 구름을 인 기와지붕 누각이 아슴푸레하게 얹혀있다. 걸어서는 7,500개가 넘는 계단을 올라야 한다던 말도, ‘쿵푸팬더’류의 중국풍 영화에 등장하는 판타지도 가히 허풍만은 아니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리자 구름의 움직임이 눈에 보일 만큼 빨라졌다. 난톈먼(南天門)을 통과해 정상으로 향하는 발걸음도 덩달아 바빠졌다. 감질날 만큼만 모습을 드러냈던 바위능선이 구름 속으로 다시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그 사이 빗발은 더욱 굵어졌고 바람도 세졌다. 20도를 훌쩍 웃도는 타이안 시내 기온에 맞춰 얇은 옷만 걸치고 올라온 관광객은 금세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타이산 정상의 평균기온은 산 아래에 비해 봄에는 8도, 여름에는 9도 가량 낮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 없다. 해발 1,400m가 넘는 타이산 능선에서도 중국식 자본주의는 어김없이 위력을 발휘했다. 난톈먼 일대의 상가에서 뜨거운 차와 비옷을 판매하는 건 기본이고, 바람막이 외투까지 대여해준다. 반공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중공군’의 겨울 외투를 걸친 관광객이 눈에 많이 띄는 이유다.
난톈먼에서 비샤츠(碧霞祠)까지 600m 산책로는 ‘하늘 길(天街)’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왼편은 낮은 암벽이고, 오른편은 천길 낭떠러지다. 짙은 구름 때문에 낭떠러지는 실감할 수 없었지만, 암벽마다 새겨진 붉은 문장들은 희미한 안개 속에 신비감을 더한다. 타이산을 찾은 명사들이 새긴 시와 문장이 800점에 이르고, 이를 모두 둘러보려면 며칠은 걸릴 거란다. 가이드는 자신도 뜻을 모른다는 붉은 문양이 휘갈겨진 바위로 안내했다. 복잡한 한자처럼 보이지만 바위에 새긴 부적이다. 양팔을 벌려 위에서부터 쓸어내려 주머니에 넣어 타이산의 기운을 담아가라고 권한다.
타이산을 중국인들이 가장 오르고 싶어하는 산으로 꼽는 이유는 바로 이곳이 춘추전국시대부터 도교와 민간신앙의 성지였기 때문이다. 하늘 길 끝자락의 비샤츠가 그 중심이다. 송나라 때 세운 비샤츠는 태산을 다스리는 여신, 인간사의 선악과 생사를 관장하는 벽하원군(碧霞元君)을 모신 사당이다. 일종의 큰 신당이고 신전이다. 입구의 석탑엔 비바람에도 찢어지지 않는 붉은 헝겊으로 만든 소지가 빼곡히 감겨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다. 정면 사당 앞에는 벽하원군을 향해 절을 올리는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한편에서는 장작만한 대형 향을 태우면서 피어 오르는 연기가 자욱하게 퍼진다. 멀리서 볼 때 불이 난 게 아닌가 의심했을 정도다. 사당은 연기와 뒤섞인 짙푸른(碧) 안개가 노을(霞)처럼 아득하게 휘감아 한층 신비롭고 신령스럽다.
역대 황제들이 봉선의식 장소로 타이산을 선택한 이유도 그 신령스러운 힘에 기댔기 때문이리라. 봉선의식은 천자가 하늘과 땅의 뜻을 받들어 백성을 다스리겠다고 고하는,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 취임식이다. 그러나 일반 백성은 말할 것도 없고, 황제라도 모두 타이산에 오를 수는 없었다. 타이산에서 봉선의식을 치른 황제는 72명에 이르지만 대부분 산 아래 대묘(大廟)에서 치렀고, 타이산 꼭대기인 위황딩(玉皇頂)에서 제를 올린 황제는 진시황과 한나라 무제, 당나라 현종, 청나라 건륭제 등 열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높이와 풍광으로만 치면 결코 최고라 할 수 없지만, 타이산을 중국의 5악(동악태산 東岳泰山, 서악화산 西岳華山, 남악형산 南岳衡山, 북악항산 北岳恒山, 중악숭산 中岳嵩山)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연유다.
하산할 시간은 다가오는데 구름은 걷힐 기미가 없고, 타이산은 끝내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나중에 식사를 함께한 산둥성 여유국 관계자는 진시황이 타이산을 오를 때도 비가 왔다는 기록이 있다며 황제의 기운을 제대로 받은 날이라 위로했다. 아래서 올려다보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산, 하지만 한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연과 인간이 빚은 오밀조밀한 풍광이 웅장한 봉우리로 다가오는 신비로운 산, ‘갈수록 태산’이요 ‘볼수록 태산’이다.
타이안(중국)=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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