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내달 심포서 논의 가속
징벌적 손배 대신 위자료 높일 듯
법원이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처럼 악의적 범죄와 관련된 민사소송에 형사재판에 적용돼온 국민참여재판(배심제) 도입 검토에 나섰다.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국회 입법화의 문턱을 넘지 못한 상황에서 피해 사망자에 대한 위자료(정신적 손해배상) 금액을 높이기 위해 국민 배심원의 의견을 판결에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24일 대법원에 따르면, 악의적 범죄로 인한 사망사건의 민사재판에 배심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6월 27일 ‘국민의 생명ㆍ신체 보호 적정화를 위한 민사적 해결방안’ 심포지엄에서 논의된다.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과 국회 입법조사처가 공동 주최하는 점도 이례적이다. 정준영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민사배심제 도입 방안 연구를 발표한다. 대법원 관계자는 “제조물로 인한 피해 책임을 물을 때 인과관계 입증이 중요한데 법원의 판단과 시민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 ‘국민이 어떻게 보느냐’도 중요한 요소로 보고 배심원 평결을 고려해 재판부가 판단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배심제 취지를 설명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 임직원에 형사 책임을 물을 수는 있지만 비슷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기업에 경고하거나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데에는 한계가 크다. 그래서 법원은 위자료 금액을 크게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태 관련 민사소송을 맡은 재판장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의견이 오가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7월 15일 전국민사법관 포럼에서 ‘불법행위 유형에 따른 적정한 위자료 산정방안’에 대한 토론도 열린다.
법원은 배심제 도입이 위자료 상향에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법원 관행상 교통사고나 산업재해 등 과실치사 사망자에 대한 위자료는 최대 1억원이다. 재경법원 판사는 “보험료 인상에 미칠 영향을 감안해 법원이 보험사와 관련한 위자료 액수를 높이는 데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며 “위자료에 대한 기준 마련을 고민하면서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할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변호사와 교수 등 1,000명은 20대 국회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촉구하는 성명서도 발표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지지하는 변호사ㆍ교수모임’은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식품과 약품, 세제 등 생활화학제품처럼 국민의 생명ㆍ신체에 직접적 위해를 가하는 제조물에 한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명령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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