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리 콤비 유럽 대사 경력, 유연성 기대”
최룡해, 강석주 장의위원장 맡아
2인자 굳히고 中 특사 길 닦아
20년 넘게 북한의 외교 수장으로 활약해온 강석주(76) 전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가 사망하면서 북한 외교라인은 ‘리수용-리용호’ 투 톱 진용으로 꾸려졌다. 두 사람은 대북 제재 고립 국면을 탈피하기 위해 공세적 외교로 총력전을 펼칠 것이란 전망이다.
조선중앙방송은 강석주 전 비서가 지난 20일 급성호흡부전과 식도암으로 숨졌다고 21일 보도했다. 강석주는 1984년 외무성 부부장에 임명된 이후 북한의 대미협상과 실무 외교를 진두지휘 해왔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영변 핵시설 동결을 조건으로 경수로와 중유 지원을 받아낸 제네바 합의를 이끌었고, 북핵 협상 기술인 ‘벼랑 끝 전술’ 역시 그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강석주의 빈 자리는 리수용(81) 노동당 정무국 국제담당 부위원장과 리용호(60) 신임 외무상이 채우게 됐다. 새로운 외교라인에 대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신임은 매우 두터워 보인다. 리수용은 지난해 12월 사망한 김양건 노동당 비서의 국가장의위원 명단(70명)에 거론조차 되지 않았으나 이번 강석주 장의위원 명단(53명)에는 6번째로 이름을 올리며 핵심 실세로 급부상했다. 리용호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도 각각 21위와, 51위에 진입하는 등 외교라인이 전반적으로 승승장구하는 모습이다.
외교라인의 약진은 김 위원장이 국제사회를 향한 외교전에 공을 들이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제7차 노동당 대회를 통해 핵 경제 병진노선을 항구적인 전략이라고 못 박은 북한의 다음 수순은 국제사회로부터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고, 핵 군축 협상으로 대가를 얻어내겠다는 것으로, 외교라인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리수용 리용호의 ‘리-리’ 외교체제가 ‘강석주 시대’보다 유연하면서도 공격적인 외교를 펼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두 사람이 각각 스위스와 영국 등 유럽에서 대사를 오래 지내 서방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점에서 북한의 입장을 ‘세련되게’ 어필하는 데 능할 것이란 관측이다. 특히 리용호를 만나본 국내외 당국자들의 한결같은 평가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다”로 귀결될 만큼 협상력에 대한 기대도 높이고 있다.
두 사람 등장 이후 북한의 외교적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지난 20일 적도기니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고, 김영철 노동당 정무국 대남 담당 부위원장이 돌연 쿠바 방문에 나선 것도 대북 제재 국면에서 자신들의 ‘우군’을 묶어 두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다양한 채널을 동원한 탐색전 성격의 외교적 대화 시도도 예상된다.
국제사회가 북핵 자체를 용인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들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22일 “강석주는 재량권이 있어서 ‘주고 받기’ 식의 그랜드 빅딜 외교가 가능했지만 두 사람은 실무형으로 창의적 해법 제시는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며 “기존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녹음기 역할에 머물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최룡해 정치국 상무위원이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제치고, 강석주 장의위원장을 맡은 것을 두고 명실상부하게 권력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북한이 최룡해의 위상을 높인 것은 그를 중국 특사로 보내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으로 해석되고 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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