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2월10일 대만 제2의 도시 가오슝에서 민주화 세력이 세계인권의 날을 맞아 개최하려던 인권포럼이 국민당 정부의 불허로 무산됐다. 포럼을 반정부 집회로 규정한 국민당은 경찰과 군을 동원해 봉쇄했다. 대규모 유혈사태로 번진 끝에 수백 명이 체포됐고, 지도부 수십 명은 군사재판에서 반란혐의로 기소됐다. 가족들까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대만 판 광주민주화 운동이다. 71년 대만이 유엔에서 쫓겨나고 그 해 1월 미국과의 외교관계가 단절되면서 사실상 일당독재였던 국민당의 체제불안은 극에 달한 상태였다.
▦ 포럼을 주도한 측은 그 해 5월 창간된 반정부 잡지 ‘메이리다오(美麗島)’였다. ‘야당 대부’ 황신제(黃信介)가 만든 이 잡지는 70년대 민주화 열풍을 타고 급속히 민심을 파고 들어갔다. 5개월 뒤 국민당이 잡지 발간을 전격 금지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공교롭게도 당시 대만 한국대사관의 항의였다. 두 번째 호(號)에서 다룬 ‘한국 경제기적의 신화를 벗기다(揭發韓國經濟奇蹟的神話)’라는 기사가 한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였다. 잡지 파동에서 기인한 가오슝 사건은 국민당에 의해 중국 공산당과 내통한 반란음모로 덧씌워졌지만 대만 민주화와 민진당 출범의 모태가 됐다.
▦‘아름다운 섬’을 뜻하는 포르투갈어 ‘포모사(formosa)’에서 유래한 ‘메이리다오’는 70년대 대만의 민요를 여류시인 천슈시(陳秀喜)가 개사한 노래다. 70~80년대 계엄령 시기 당국에 금지된 저항가요로 불렸다. ‘하늘하늘 끝이 없는 태평양이 품고 있는 자유의 땅/ 우리 여기 용감한 인민들이 누더기 옷을 입고 거친 수레를 끌며 산과 들을 개척했네’라는 가사의 선율이 서정적이다. 대만 판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민주화 세력이 진보잡지의 이름으로 따오면서 국민당 독재에 항거하는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 20일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 취임식에서 메이리다오가 우렁차게 울려퍼졌다. 차이 신임 총통은 감격에 겨운 듯 박자에 맞춰 손을 흔들며 따라 불렀다. 시대변화를 실감케 했다. 대만 국가도 그의 모계 혈통인 원주민 파이완족 어린이들이 민속의상을 입고 단상에 올라 파이완족 말로 불렀다. 취임사에서 ‘하나의 중국’을 뜻하는 ‘92공식’을 언급하지 않는 등 대중국 관계에 대해 애매한 화법을 썼지만, 민주화와 독립을 상징하는 메이리다오 선율의 메시지만큼은 강력했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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