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관계자들에게 국책은행 등 금융권으로부터 대규모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알선한 브로커들에 대해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2부(부장 최의호)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알선수재) 및 범죄수익은닉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금융ㆍ대출 알선 브로커 이모(42)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120시간의 사회봉사와 1억1,100만여원의 추징금을 명령했다고 22일 밝혔다. 이씨와 범행을 공모한 김모(45)씨에게도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2,750만원 추징금이 선고됐다.
재판부에 따르면 이씨는 2013년 1월 한 대출업자로부터 “전자부품 제조업체인 디지텍시스템스의 전무 남모(42)씨가 국책은행 등에서 대출을 받고 싶어하니 알선해 줄 사람을 물색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씨는 곧 국책은행 관계자들을 연결시켜 줄 또 다른 금융브로커 최모씨를 섭외한 뒤 그를 남씨에게 소개해 줬다. 최씨는 경기 파주시에 위치한 디지텍시스템스 사무실에서 남씨를 만나 “수출입은행 등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 그들을 통해 대출받도록 해주겠다. 국민은행에도 지인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디지텍시스템스는 2013년 2월14일 한국수출입은행에서 200억원을 대출 받았고, 3월22일 100억원을 상환한 후 일주일 뒤 200억원을 추가 대출받았다. 또 2013년 3월 4,6일에는 국민은행이 각각 133억원, 130억원을 대출해줬다.
이씨는 대출 알선 대가로 자신이 운영하는 법인 명의 계좌로 2억2,000만원을 송금 받았다. 이씨와 다른 브로커들은 돈을 수령하기에 앞서 경영자문에 대한 수수료처럼 위장하기 위해 기업경영자문계약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디지텍시스템스는 경영진의 무분별한 횡령 등으로 지난해 1월 상장 폐지됐다. 특히 이 회사가 수출입은행 및 국민은행에서 대출한 1,160억원 중 885억원 상당이 상환되지 않아 대규모 부실이 초래된 상태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금융기관 업무의 공정성과 사회적 신뢰를 훼손했고 범죄 수익을 은닉함으로써 사법질서를 저해했다”며 “다만 범행을 인정하며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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