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미국 대선 공화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도널드 트럼프의 최측근은 누굴까요. 제럴드 포드와 로널드 레이건, 부시 부자(父子)를 대통령으로 만든 폴 매너포트 선대위원장일까요. 아니면 경선 초기부터 트럼프를 보좌한 코리 루언다우스키 선대본부장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모두 아닙니다. 정답은 두 아들 도널드 주니어 트럼프(돈 주니어ㆍ38), 에릭 트럼프(35)입니다. 트럼프란 이름을 물려받은 이 둘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대선 후보 트럼프가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가장 의존하는 참모로 알려졌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것이 미국에도 통하는 셈입니다.
이 때문일까요. 트럼프에 대한 ‘저인망’(底引網) 검증을 선언한 워싱턴포스트가 최근 돈 주니어와 에릭의 성장 과정과 사생활을 심층 취재한 특집 기사를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트럼프에 대해서는 ‘막말ㆍ험담’, ‘여성편력’, ‘고집불통’식으로 보도하던 이 신문이 두 아들에 대해서는 아주 긍정적 보도를 내놨습니다.
‘겸손한 상속자’, ‘아버지보다 빛나는 아들들’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트럼프 2세에 대한 기사는 결국 자식 교육에서 어머니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감수성 예민한 10대 중ㆍ초반에 어머니(이바나 트럼프ㆍ67)를 버린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바람 피우는 걸 목격한 두 인물이 가정에 헌신적이고 겸손한 성품을 지니게 된 건 모두 어머니와 외가 쪽 교육 때문이라는 겁니다.
신문에 따르면 돈 주니어와 에릭은 처음에는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에 대해 매우 반감을 가졌다고 합니다. 1993년 부모들의 이혼 직후, 당시 15세와 12세이던 돈 주니어와 에릭이 “우리는 어머니와 외할머니와 함께 할 것”이라는 내용의 공동 언론성명을 내놓은 게 대표사례이죠. 또 장남인 돈 주니어는 “아빠는 우리는 물론이고 자신 조차 사랑하지 않아요. 그저 돈만 챙긴 뿐”이라고 비난했고, 차남 에릭도 “헤어지는 게 싫다”고 엄마에게 매달렸다고 합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의 두 아들이 훌륭하게 자라나서 결국 아버지의 최측근 참모가 된 과정에는 이바나 트럼프의 고향인 체코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게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모델로 활약한 이바나 트럼프는 체코 소도시 즐린 태생인데, 트럼프 두 아들은 어린 시절 여름방학 마다 이곳 외가에서 외할아버지(밀로스 젤니체크)와 외할머니(마리아 젤니체크)와 지냈다고 합니다. 체코가 여전히 동구 공산권에 속했던 1980년대였던 만큼 돈 주니어와 에릭이 기억하는 체코에서의 여름방학은 미국과는 딴 판이었습니다. 비디오게임 같은 미국식 놀이는 전혀 없었고, 영어가 나오는 TV 채널도 하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 엔지니어였던 외할아버지와 구두공장 직원이던 할머니는 미국 부잣집 도련님인 외손자들에게 가난하게 사는 체코식 덕목을 가르친 것으로 보입니다. 1990년 숨진 외할아버지는 생전 외손자들에게 낚시와 사냥법을 가르쳤고 아직도 생존한 외할머니는 늘 ‘음식을 남기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이바나는 두 아들에게 담배를 배우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뒤 차를 사줬고, 심지어 돈 주니어가 사춘기로 접어들었을 때에는 문란한 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에이즈(AIDS)의 위험성에 대한 글을 큰 소리로 여러 차례 읽도록 했다고 합니다. 트럼프 자녀들은 그래서 일반적 예상과 달리 매우 금욕적이라고 합니다.
어머니와 외가 교육의 탓일까요. 두 아들은 장성한 뒤 아버지의 충실한 협력자가 됐지만, 가정에 충실합니다. 돈 주니어는 아내(바네사 트럼프)와 10년 이상 원만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으며 슬하에 5남매를 두고 있습니다. 에릭 역시 2014년 라라 트럼프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고 있답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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