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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나 목숨 걱정해야”…여성들 섬뜩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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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나 목숨 걱정해야”…여성들 섬뜩한 일상

입력
2016.05.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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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ㆍ성폭행ㆍ강도ㆍ방화 등

여성 대상 강력범죄 폭발적 증가

여자들만 살면 범죄 노출 걱정

화장실 이용 때는 옆 칸 확인…

일상 속 체감 공포는 훨씬 더해

“일부 남성의 왜곡된 젠더의식 등 바로잡아야”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번 출구 외벽에 시민들이 묻지마 살인 피해 여성을 추모 하고 있다.신상순 선임기자ssshin2hankookilbo.com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번 출구 외벽에 시민들이 묻지마 살인 피해 여성을 추모 하고 있다.신상순 선임기자ssshin2hankookilbo.com

“화장실에 들어갔다 운이 좋으면 그냥 나오지만 운이 나쁘면 몰래카메라에 찍히고 더 운이 나쁘면 죽는 게 대한민국 여성들이 처한 현실이죠.”

직장인 김모(27ㆍ여)씨는 밤 10시가 넘어 거리를 걸을 때면 손가락 사이에 열쇠를 끼우고 혹시 모를 누군가의 공격에 대비한다. 그는 중학생 때 집 대문 바로 앞에서 한 남성이 자신의 입을 막고 어디론가 끌고 가려 했던 끔찍한 경험이 있다. 고교 시절에는 침 맞으러 갔다가 성폭행을 당할 뻔하기도 했다. 두 번의 위험에서 가까스로 벗어나긴 했지만 성인이 된 지금도 사회적 약자인 여성으로서 겪을 수 있는 범죄의 공포는 전혀 줄지 않았다. 김씨는 20일 “강남역 노래방 화장실 살인 사건을 보면서 특히 여성은 언제 어디에서나 목숨을 걱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좌절했고, 더 불안해졌다”고 말했다.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앓던 남성이 강남역 노래방 공용화장실에서 여성이 들어오길 기다렸다 저지른 살인 사건 이후 강력범죄에 대한 여성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강력범죄 피해자 중 여성 비율도 점차 늘고 있는 추세여서 사회의 근본적 인식 전환, 안전망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

화장실 살인사건 전에도 여성혐오 등을 이유로 한 여성 대상 강력범죄는 꾸준히 이어져왔다. 2014년 3월 서울 서초구에선 공익근무요원이었던 20대 남성이 길 가던 20대 여성을 벽돌 등으로 무참히 살해해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특히 그는 “여성은 암적인 존재다” 같은 살인 행동수칙을 마련해 충격을 줬다. 같은 해 7월 울산에서도 2년 전 군에서 제대하고 백수로 지내던 20대 남성이 버스정류장에서 홧김에 일면식도 없던 여대생을 흉기로 찔러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청 범죄 통계를 봐도 살인 강도 강간(성폭력) 방화 등 강력범죄에서 여성 피해 비중은 최근 20년 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1995년 9,762명의 전체 피해자 가운데 67.5%(6,587명)를 차지했던 여성 비율은 2005년 71.9%, 2010년 80.9%에 이어 2014년에는 86.0%까지 치솟았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가부장적 분위기 속에서 자신보다 신체적 조건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취약하다고 생각하는 여성을 남성 범죄자들이 집중적으로 노린 결과”라고 분석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한국은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살해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의 2013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52.5%)는 일본ㆍ홍콩(52.9%) 등과 함께 살인사건 피해자 중 여성 비율이 남성보다 높았다.

일상에서 여성들이 체감하는 범죄 공포는 통계 수치 그 이상이다. 서울의 한 복도식 오피스텔에서 여동생과 자취를 하는 직장인 윤모(25ㆍ여)씨는 “여자들만 사는 집이라는 걸 알고 해코지할까 봐 복도에 사람이 있으면 한참을 기다렸다가 집에 들어간다”며 “공공화장실을 이용할 때도 양 옆 칸이 비었는지 모두 확인할 정도로 타인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이런 여성들의 두려움과 불안 확산을 막기 위해 우선 일부 남성들의 비뚤어진 젠더 의식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모든 여성들이 ‘언제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며 “단순히 성별에 따른 혐오의 차원을 떠나 한국사회에 만연한 구조적 차별과 폭력이 범죄의 뿌리가 됐다”고 진단했다. 김지선 형사정책연구원 범죄통계조사센터장은 “일간베스트 저장소 등 여성을 비하하고, 상품화하는 온라인 사이트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 의식부터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오랫동안 뿌리내린 여성차별ㆍ혐오 문화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는 “가부장사회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겼던 남성성이 무너지면서 불안감을 느끼는 남성들이 이를 손쉽게 해소하기 위해 된장녀, 김치녀 등 짓밟혀도 되는 여성들이 있다는 여성혐오 문화를 사회적 진리화하고 있다”며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성평등한 사회의 남성과 여성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사회적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20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시민들이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의 20대 여성 희생자 추모 메시지를 적은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의 한 노래방 건물 화장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뉴스1
20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시민들이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의 20대 여성 희생자 추모 메시지를 적은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의 한 노래방 건물 화장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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