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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동성 부부는 되지만 동성 혼인은 안된다? 단순ㆍ복잡한 동성혼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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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동성 부부는 되지만 동성 혼인은 안된다? 단순ㆍ복잡한 동성혼 제도

입력
2016.05.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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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인 17일 과테말라 수도 과테말라시티에서 한 동성 커플이 무지개빛 국기를 든 채 키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인 17일 과테말라 수도 과테말라시티에서 한 동성 커플이 무지개빛 국기를 든 채 키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1989년 10월 1일 덴마크 코펜하겐 톰 알베어 부시장의 연설 중 새롭게 등장한 단어는 하나뿐이었다. 세계 최초로 동성 부부를 위한 결혼 대체제도를 고안한 덴마크는 이날 알베어 부시장의 주례로 11쌍의 동성 부부에 ‘법적 동반자(registered partnership)’ 지위를 부여했다. ‘혼인(marriage)’이라는 전통적인 단어 하나를 버렸을 뿐이지만 이는 향후 동성 파트너십 제도로 자리 잡으며 세계적인 동성혼 합법화 흐름에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파트너십은 어디까지나 결혼 제도를 보완할 뿐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동성 결혼과 파트너십은 보장하는 법적 권리 면에서 엄연히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근 이탈리아가 가톨릭이 지배적인 사회 환경을 이기고 동성 부부의 파트너십을 법제화해 대외적으로 찬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내부적으로는 파열을 거듭하고 있는 이유다. 이에 세계 각지의 동성 연인들은 여전히 법 조항 속 단어를 골라 가며 이성 부부와 동등한 혼인을 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동성혼과 파트너십의 차이는 국가마다 상이한 법 체계로 인해 일괄 요약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파트너십은 대게 부부의 성별에 상관 없이 서로의 배우자(파트너)로 인정해 상속권, 건강보험과 같은 사회보장, 세금, 주거혜택에 있어 제한적인 부부의 권리를 보장해준다. 나라에 따라 시민결합(civil union)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혼인을 ‘남성과 여성’ 부부로 제한한 경우 이를 우회하기 위해 파트너십을 고안한다.

반대로 동성혼 체제는 기존의 혼인 관련 법률 상 성별을 특정하는 문구를 바꿔 이성부부와 동일한 혼인 효력을 발휘시키는 경우가 다수다. 세계 최초로 동성혼을 합법화한 네덜란드는 2000년 12월 법률 개정으로 “혼인은 이성 또는 동성의 두 사람에 의해 체결될 수 있다”고 명시해 동성 부부도 혼인, 이혼, 입양에 걸쳐 이성 부부와 같은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끔 했다. 애초 법률에 성별 명시가 없는 경우는 판례를 통해 동성혼 인정 여부를 가리는데, 국내 최초로 동성혼 수리 소송을 제기한 김조광수 영화감독ㆍ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 부부가 주장하는 바가 여기에 해당한다.

2016-05-20(한국일보)
2016-05-20(한국일보)

모든 역내 국가가 동성 부부를 대상으로 파트너십 이상의 제도를 갖춘 유럽에서도 보장 수준은 상이하다. 국제동성애협회(ILGA) 유럽지부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유럽 49개국 중 동성혼 체제를 택한 나라는 12곳으로 24.5%에 해당한다. 파트너십 제도를 갖춘 국가는 독일, 오스트리아 등 23곳으로 동성혼 국가보다 많은데, 네덜란드나 아일랜드와 같이 두 제도를 동시에 법제화해 국민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기는 경우도 있다. 유럽 국가 셋 중 하나(34.7%)는 동거인 등록 제도를 갖추고 있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경우 1999년 시민연대협약(PAC)을 통해 성별과 무관하게 동거인을 파트너로 등록 시 부부에 준하는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했다.

하지만 파트너십ㆍ동거 제도가 보장하는 권리가 제한적인 만큼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다. 동성애 사안과 경제학을 접목한 연구로 유명한 리 베젯 미국 매사추세츠대 교수는 파트너십 제도에 상당히 냉소적인 입장이다. 베젯 교수는 이탈리아의 시민결합법이 통과된 11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와 인터뷰에서 “시민결합은 일종의 정치적 타협”이라며 “물론 동성 커플들에 실질적인 혜택을 가져다 주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성소수자들의 권리와 존엄성을 빼앗아 ‘2등 시민’으로 만들어 버리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시민결합만 인정한 국가에서 동성애 인권 단체들이 쟁취하려고 노력하는 대표적인 권리가 입양이다. 시민결합에 만족하지 않고 동성혼 입법화를 추진하는 것도 혼인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입양 또는 양육권의 탓이 크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일종의 해외 ‘입양 망명’을 떠난 한 부부는 “아이와 함께 고향에 돌아갈 때마다 우린 회색 지대에 놓인다. 아이가 언제쯤 이탈리아 시민권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모국의 선택에 분노했다. 이에 동성 부부 공동으로 입양 가능하도록 허용한 국가가 있는 반면, 부부 중 한 측이 이미 키워 온 양자에 대해 다른 파트너가 추가로 양육권을 갖는 것만 허락하는 국가도 있다.

아시아는 동성혼, 파트너십 등 동성애자의 결혼 관련 권리 개선에 있어 가장 진척이 느린 권역으로 꼽힌다. 일본의 경우 도쿄(東京) 시부야(?谷)구와 세타가야(世田谷)구가 지난해 11월 동성 부부를 대상으로 파트너십 증명서를 발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앞서 아베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가 직접 “현행 헌법 하에서는 동성커플의 혼인 성립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힌 만큼 증명서는 법적 효력 없이 상징적 의미를 갖는 데 그치고 있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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