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토박이 기자의 제주탐구생활 7
제주도민 상당수도 절반만 이해
유네스코 ‘소멸위기 언어’에 등재
토박이 대화 들으면 싸움 착각도
지난해 방영된 TV드라마 ‘맨도롱 또똣’은 제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다. 배우들의 대사 중 제주도 사투리의 비중도 컸다. 그리고 친절하게 해석이 어려운 제주도 사투리는 자막 처리했다. 외화영화도 아닌 한국 드라마에서, 그것도 한국어로 말하는데도 자막을 봐야만 이해할 수 상황은 시청자들에게 조금 낯선 경험일 것이다.
제주 사람들도 그 드라마가 낯설기는 매한가지였다. 일상 생활에 쓰고 있는 언어를 자막으로 보는 데다 배우들이 많은 연습을 했음에도 어딘가 이상하게 들리는 제주어 발음은 다소 어색했다. 차라리 ‘서울말’을 쓰는 장면이 더 편안하게 들릴 정도였다.
그러면 제주사람들은 제주어를 모두 이해할까?. 답은 아니다. 제주도민 10명 중 3∼4명은 노인들이 사용하는 진짜배기 제주사투리는 절반 정도 밖에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예 이해하지 못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또 20대 이하에서는 70% 정도가 이해를 잘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제주사람들도 나이가 어릴수록 제주어에 대한 이해도는 떨어진다.
이처럼 제주어를 사용하는 제주사람들이 줄어들면서 지난 2011년 12월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소멸위기 언어’ 5단계 중 4단계인 ‘아주 심각한 위기에 처한 언어’에 등재되는 등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제주사람들도 제주어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관광객 등 제주를 찾은 타 지역 사람들은 오죽할까. 심지어 제주 사투리는 외국어보다 더 어려운 소통불가의 ‘외계어’라고 말까지 나올 정도다.
제주 사투리가 얼마나 이해하기 힘든지 알 수 있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서울 출신 며느리가 제주남자를 만나 결혼해 신혼여행을 갔다온 후 제주도 시집을 찾았다. 집에 온 며느리를 보자마자 시어머니는 “폭싹 속았져”라는 말을 건넸다. 제주 사투리를 모르는 며느리는 ‘속았다’는 말로 알아듣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며느리는 결혼 전에 남편이 어떤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대놓고 시어머니가 속았다고 말했을까라고 생각이 들어 남편과 크게 싸워 집을 나갔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폭싹 속았져’는 ‘매우 수고했다’는 의미로, 시어머니가 신혼여행 때문에 지친 며느리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한 것뿐인데 며느리는 전혀 다른 뜻으로 이해해 남편만 잡은 셈이다.
최근 제주에 물밀 듯이 몰려오는 이주민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 중 하나도 역시 언어소통이다. 이주민들이 제주에 자리를 잡는 곳 대부분이 도심지역이 아닌 농촌지역이고, 이 곳에는 노인들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주민들과의 대화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제주의 한 어촌마을에서 해녀가 되기 위해 ‘인턴’과정을 밟고 있는 ‘육지 출신’의 30대 이주민 여성은 나이가 지긋한 해녀들이 자신에게 하는 말이 처음에는 전부 욕인줄 알았다고 한다. 몇 개월 지나서야 그냥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말인지 알게 됐지만, 여전히 절반도 이해를 못하고 낯설다고 털어놓았다.
실제 제주사람들끼리 하는 대화를 듣다 보면 말이 세고 거칠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커 마치 싸우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제주의 강한 바람 때문이다. 바람이 강하게 자주 부는 제주지역에서 말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단어들이 짧아야 하고 소리가 커야 했다. 실제 제주어에 ‘강(가다), 봥(보다), 왕(오다), 기(그래)’처럼 축약형 언어들이 발달해 있다.
또 제주어는 다른 지역과 사투리와 달리 고어(古語)가 많이 보존되어 있고, 차용어도 많다. 또한 제주어는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아래아(ㆍ), 반치음(ㅿ), 순경음 비읍(ㅸ) 등과 중세에 사용하던 어휘가 상당수 남아 있다. 이처럼 제주어는 한국어의 원형과 한글의 제작원리를 보여주는 언어로 그 특수성과 언어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다.
이 때문에 제주어의 문화적 가치를 보전하고 계승하기 위해 지난 2007년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지역 방언에 관한 조례인 ‘제주어 보전 및 육성 조례’가 제정됐다. 최근에는 초등학교에서 제주어 수업이 진행되고 제주어 말하기 대회까지 열리는 등 소멸 위기를 맞은 제주어를 지키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지는 것은 그나마 희망적이다. 제주도가 우리나라의 보물섬이듯이, 제주어도 제주사람들에게는 후세 대대로 이어져야할 소중한 보물 중 하나다.
다음은 제주사람들이 흔히 쓰는 사투리를 난이도로 나눠봤다. 이들 제주 사투리를 전부 아는 사람은 제주출신이 틀림이 없고, 2단계 수준부터는 제주를 자주 찾았거나 주변에 제주사람들과 인연이 있을 것이다.
◆난이도 1단계= 아방(아빠), 어멍(엄마), 할망(할머니), 하르방(할아버지), 똘(딸), 소나이(남자), 지지빠이(여자아이), 폴(팔), 야이(이 아이), 자이(저 아이), 가이(그 아이), 아시(동생)
◆난이도 2단계= 혼저옵서(어서오세요), 재기 재기 옵서(빨리 빨리 오세요), 이거 얼마우꽈?(이것은 얼마입니까?), 놀당 갑서양(놀다가 가세요), 고랑 몰라마씸!(말해도 몰라요), 와리지마(서두르지마), 게메예(그러게요), 경허난(그래서요), 이듸(여기), 저듸(저기), 그듸(저기), 기(그래), 기?(그래?), 기구나(그렇구나), 기꽝?(그래요?, ‘기?’의 높임말), 게난?(그런데?), 게난마씸?(그런데요?)
◆난이도 3단계= 무사?(왜), 인(있어), 언(없어), 몸냥해(마음대로해), 잘콘다리여(쌤통이다), 머랜 고람디?(뭐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돈 봉간(돈 주웠어), 조끝에 와봅써(옆에 오세요), 호끔(조금), 데끼다(던지다), 고배시(가만히), 야가기(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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