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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축제, 꼭 해야 하나요?

입력
2016.05.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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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 공채ㆍ자격증 시험 등

취업 관련 일정 축제와 맞물려

대학생 34% “참여하지 않는다”

연예인 인기에 기대 관심 유도

중ㆍ고교생 몰려 재학생은 뒷전

“음주 위주 프로그램도 바꿔야”

축제가 한창인 19일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한 학생이 주점을 홍보하는 학생들을 외면한 채 걸어가고 있다. 신재훈 인턴기자 (세종대 광전자공학과 4)
축제가 한창인 19일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한 학생이 주점을 홍보하는 학생들을 외면한 채 걸어가고 있다. 신재훈 인턴기자 (세종대 광전자공학과 4)

대학생 신정훈(26)씨는 지난주 있었던 학교 축제만 생각하면 아직도 분통이 터진다. 늦은 밤 곧 있을 자격증 시험을 앞두고 하숙집에서 공부 중이던 그는 학교에서 들려오는 클럽 음악소리 때문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소음방지용 귀마개도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책장을 덮고 잠을 청했으나 새벽 3시까지 창문이 흔들릴 정도로 울려대는 소음 탓에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신씨는 20일 “신입생 때 큰 기대를 안고 축제에 갔지만 술판만 벌이는 선배들을 보고 실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이런 식의 대학 축제를 연례행사처럼 꼭 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대학생활의 꽃’으로 불리는 축제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매서운 취업난과 천편일률적 축제 프로그램에 회의를 느끼는 대학생들이 많아지면서 ‘축제가 과연 필요하냐’는 무용론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극심한 취업 압박은 요즘 학생들이 축제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신입사원 공채나 인턴십은 물론, 각종 자격증 시험까지 취업 관련 일정이 축제 시즌과 줄줄이 맞물려 있어 한가롭게 낭만을 즐길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 ‘졸업반 때 취업을 준비하면 늦는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최근에는 취업전선에 내몰린 4학년뿐 아니라 2,3학년들도 시끌벅적한 축제 현장을 뒤로하고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추세다. 실제 지난해 취업포털 알바몬이 대학생 1,0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취업 준비로 바빠 축제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응답(34.3%)이 가장 많았다. 청년들의 팍팍한 현실이 캠퍼스의 추억을 만들 기회도 앗아간 셈이다. 수도권의 한 사립대 3학년인 장모(24)씨는 “축제 기간 휴강이 생겨 그간 미뤄왔던 전기산업기사 자격증 강의 동영상을 몰아 봤다”며 “사실상 축제에 참석하는 건 대부분 신입생”이라고 말했다.

인기 연예인의 콘서트장으로 변질된 분위기와 음주 위주의 프로그램도 축제를 기피하는 요인 중 하나다. 연예인의 인기에 기대 참여를 유도하다 보니 인근 주민과 교복 차림의 중ㆍ고교생들까지 몰려 정작 축제의 주인공인 재학생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서울의 한 여대에 재학중인 김정윤(22)씨는 “그나마 공연이 볼 만한데 사람들로 넘쳐나 일찌감치 관람을 포기했다”며 “대신 축제 기간을 활용해 친구들과 1박2일 여행을 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무리한 연예인 축제 마케팅이 대학의 상업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통상 이름있는 연예인 섭외에는 팀 당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이 들어 일부 대학에서는 교내 기업 홍보활동을 허용하고 대가로 후원을 받아 예산을 충당하고 있다. 인기 축제공연의 경우 입장권 가격이 치솟아 암표가 성행하기도 한다. 서울 A사립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하려면 연예인 섭외 만한 게 없다”며 “독특한 행사를 계획해도 연예인 공연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참여한다는 보장이 없어 ‘공연 및 주점 운영’이란 축제 공식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다”고 토로했다.

대학 축제의 본질은 학생들이 중심이 돼 독창적인 학생문화를 만들어나가는 데 있는 만큼, 대중문화 의존도를 줄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례로 일부 대학에선 축제에 등을 돌린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학교 특색을 살려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긍정적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캠퍼스에 넓은 잔디밭이 있는 서강대는 텐트를 설치해 캠핑 분위기를 연출했고, 큰 호수를 가진 건국대는 외부업체에서 보트를 빌려 뱃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축제의 주인공인 학생들이 자신들의 잔치를 거부하는 건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엔터테인먼트식 놀이 문화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는 의미”라며 “학생 참여형 학술ㆍ문화축제를 늘리고 아낀 예산을 취업난에 신음하는 학생들을 위해 투자한다면 축제를 통한 선순환 구조가 마련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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