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농약사이다 항소심도 무기징역

대구고법, 19일 항소기각…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범인”

[저작권 한국일보] 상주 농약사이다 피고인 박모(82)씨가 지난해 1심 재판 과정에서 지팡이를 짚고 여성 교도관의 부축을 받아 피고인 대기실로 들어서고 있다.

마을회관 냉장고에 넣어둔 사이다에 맹동석 농약을 투입, 이를 마신 마을 주민 6명이 숨지거나 다치게 한 ‘상주 농약사이다’ 사건 피고인에게 항소심에서도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대구고법 제1 형사부(이범균 부장판사)는 19일 대구지방법원 11호 법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박모(83)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과 같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과 변호인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에 대해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다른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다른 가능성의 대부분은 일반인의 상식과 경험칙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과학적으로 밝혀진 객관적 사실에도 반한다”며 “이 사건에서는 범인이 피고인임을 가리키는 많은 증거가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유죄판단의 근거로 ▦평소 화투를 치면서 피해자들과 다툼ㆍ갈등이 있었다 ▦범행 당일 평소 전혀 찾지 않던 피해자 중 1명의 집을 찾아가 마을회관에 가는지 여부를 확인 ▦사건 당시 사이다를 마시지 않은 사람은 피고인이 유일 ▦사건 다음날 피고인의 집 풀숲에서 뚜껑이 없는 박카스병이 발견됐고 그 병에서 메소밀 검출 ▦문제의 박카스병과 피고인 집에서 발견된 나머지 9병의 일련번호가 동일 ▦같은 마을 다른 집에서 발견된 박카스 병에서 동일한 일련번호는 없는 점 ▦피고인의 상의 하의 전동휠체어 지팡이 등에서 메소밀 검출 ▦메소밀 중독으로 고통 받는 피해자들을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방치 ▦마을회관 안의 상황을 최초로 목격한 마을 이장에게 피해자들이 쓰러진 원인을 정확히 지목한 점 등을 들었다. 또 위와 같은 증거들이 하나하나로는 범인으로 단정하기 어려울 수 있어도 다 모아놓고 보았을 때 범인으로 보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고 범행을 하였음을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양형이유로 “양형부당을 항소이유로 주장하고 있지 않지만 범행결과의 중대성,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입은 고통, 공동체 붕괴, 피고인이 범행을 한사코 부인하고 피해회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점, 원심에서 배심원들의 일치된 의견을 받아들여 무기징역을 선고한 점 등 제반사정을 종합하면 무기징역은 그 책임에 상응하는 적절한 형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지난해 7월 14일 오후 2시43분쯤 경북 상주시 공성면 금계1릴 마을회관 냉장고에 전날 먹다 남겨둔 사이다 페트병에 맹독성 농약으로 사용이 금지된 메소밀을 몰래 넣어 이를 마신 할머니 6명 중 2명이 숨지고 4명이 중태에 빠뜨린 혐의(살인 및 살인미수)로 구속기소됐다.

박씨는 상주지원에서 1심 재판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국민참여재판을 신청, 대구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자 항소했다. 1심에서 배심원 7명은 만장일치로 유죄로 판단했다.

검찰은 박씨가 ▦사건 전날 화투를 치다가 심하게 다퉜다는 피해자 진술 ▦피고인 옷과 전동휠체어, 지팡이 등 21곳에서 농약 성분이 검출된 점 ▦피고인의 옷에서 검출된 농약이 사이다를 마신 할머니들의 거품을 닦아주던 중에 묻었다고 했지만 막상 거품에선 농약성분이 나오지 않은 점 ▦집에서 농약 성분이 든 드링크제 병이 나온 점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또 50여 분간 사건현장에 있으면서도 구조나 신고를 하지 않은 점 등 범행 전후의 미심쩍은 점도 박씨를 범인으로 지목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피고인 측 변호인단은 1, 2심에서 범행 동기, 농약 투입 시기, 고독성 살충제 구입경로 등 직접 증거가 없다고 반박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