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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냉채족발 한 접시 하실래예

입력
2016.05.1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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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소희의 부산 맛탐험(2)_보수동책방골목과 냉채족발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보수동 책방골목

아직 5월이 남아있는데 계절은 봄의 경계선을 넘어 여름으로 접어들었다. 부산에서 지금 어디로 가면 가장 좋을까? 몇몇 열혈남들은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어 해운대 앞바다로 뛰어들지만 아직은 이른 감이 있다. 꽃구경이 시들해질 요즘이 여행하기엔 어정쩡하다 여길 수도 있지만 걸으면서 하는 여행은 이 시기가 딱 기분 좋은 때이다.

초여름이 시작된 걷기 좋은 계절에 책의 숲으로 가보자. 최근 해외여행 트렌드 중 하나가 그 나라의 이색 서점을 방문하는 것이다. 오래된 역사를 가진 서점에서 그 나라의 과거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의 보수동에는 오래된 책방들이 이어져 거리를 이루고 있다. 보수동책방골목에 접어들면 과거와 현대의 시간이 커피믹스처럼 적절히 섞여있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책은 한 나라의 정서와 문화이다. 6.25전쟁 그 난리 통에도 책은 필요했다.

보수동 책방 골목은 6.25 전쟁 당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을 때 이북에서 피난 온 손정린씨 부부가 보수동 사거리 입구 골목 안 목조건물 처마 밑에서 박스를 깔고 미군부대에서 나온 헌 잡지, 만화, 고물상으로부터 수집한 각종 헌 책 등으로 노점을 시작한 것이 지금의 보수동 책방골목이 되었다. 이후 60~70년대에는 70여 점포가 들어서 문화의 골목, 부산의 명소로 자리 잡게 된다.

당시 생활이 어려운 피난민과 가정 형편이 어려운 수많은 학생과 지식인들은 자신이 가져온 귀중한 책을 내다 팔기도 하고 필요한 헌 책을 싼값에 다시 되사가서 학업에 충실할 수 있었다. 신학기가 되면 책을 팔고 사고 교환하려는 책 보따리가 가관이었으며 때때로 개인이 소장한 값진 고서도 흘러들어와 많은 지식인 수집가들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보수동 책방골목에는 찾아오는 이의 귀천을 가리지 않는다.

책방마다 오래된 시간들이 켜켜이 앉은 책들이 멋스럽게 놓여있다. 부산의 빈티지거리가 바로 여기이다. 절판된 보석 같은 귀한 책도 득템할 수 있고 어린시절 재미있게 읽었던 만화들도 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읽을 에세이 한 권을 골라보자. 책을 굳이 사지 않더라도 대형서점에서 느낄 수 없는 맛이 있다. 북카페를 마련하고 있는 우리글방에서는 차를 마시며 무료로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잠깐의 시간이라면 시 한편 읽어보는 것은 어떤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다운 감성을 깨우는 느긋한 여행이 될 수 있어 좋다.

향부터 시원하게 식감을 돋우는 냉채족발

보수동 책방거리에서 나와 부평동 족발거리로 걸어가 보자. 세상에 음식은 넘쳐나지만 때를 맞춰먹으면 가장 좋은 음식은 따로 있다. 여름이 막 시작할 무렵 그 해 처음으로 먹는 냉채족발이 가장 맛있는 순간이다. 부평동 족발골목은 TV에도 수없이 소개된 곳으로 족발을 파는 음식점 만 인근에 20여 곳에 이르고 집집마다 사람이 가득 들어차 있다.

이곳은 단연 냉채족발이 인기메뉴다. 입구 유리진열대에 족발이 양껏 쌓여있고 주방장은 쉬지 않고 족발을 썰어댄다. 해파리와 게맛살, 오이와 족발이 한 데 어우러져 새콤달콤하고 풍부한 맛을 낸다. 메뉴판에는 족발, 냉채족발, 그리고 오향장육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돼지족발에 오이, 양파 등의 야채와 해파리, 그리고 마늘겨자소스가 곁들여져 그 향부터 시원하게 식감을 돋우는 냉채족발이 인기다. 족발 특유의 고기냄새는 없앤 대신 새콤한 양념이 끼얹어져 젓가락질이 멈추질 않는다. 하루 종일 은근한 불에 족발을 익혀, 중간 중간 장을 끼얹어 깊은 맛을 내는데 재료와 장맛과 정성이 삼위일체가 되어 비로소 넉넉한 인정으로 쌓은 부평동 족발거리의 제 맛을 낸다.

족발거리에서 약간 빗겨난 곳에 맛집 향미족발이 있다. 숨어 있는 가게 위치는 현지인들만이 공유하고 다닌다는 뜻이다. 이집 맛의 특징은 재료가 앞발로만 만들어 맛있다. 족발은 앞발이 뒷발보다 맛이 좋다. 그런데 일행 중 한명이 조리된 족발이 앞발인지 뒷발인지 구분할 수 있다고 너스레를 떤다. 동행한 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솔깃해 듣고 있는데 족발을 보고 손을 내밀며 “손” 이라고 했을 때 손을 주면 앞발이고 아니면 뒷발이라고 한다. 싱거운 얘기라며 피식 웃지만 그런 실없는 소리조차 맛을 더하는 곳이 바로 부산여행이다.

양소희 여행작가ㆍ부산관광공사 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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