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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가 최선이었는지… 정부ㆍ병원의 실수ㆍ무책임이 남편을 죽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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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가 최선이었는지… 정부ㆍ병원의 실수ㆍ무책임이 남편을 죽여”

입력
2016.05.1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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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치과의사 꿈 이룬 남편

감기 증세로 삼성병원 갔다 옮아

양성과 음성 오간다는 이유로

세계 최장 172일간 격리당해

이전에 앓던 림프종이 악화

적절한 치료 받지 못해 사망

“진심 어린 사과받고 싶다”

메르스에 감염돼 6개월간 격리돼 있다 지난해 11월 숨을 거둔 ‘80번 환자’의 아내 배모씨가 17일 가족 사진을 보며 상념에 잠겨 있다. 배씨는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방역당국으로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서는 메르스 환자와 유가족에게 진심 어린 사과부터 해야 한다"고 한다. 배우한 기자 bwh3140@hankookilbo.com
메르스에 감염돼 6개월간 격리돼 있다 지난해 11월 숨을 거둔 ‘80번 환자’의 아내 배모씨가 17일 가족 사진을 보며 상념에 잠겨 있다. 배씨는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방역당국으로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서는 메르스 환자와 유가족에게 진심 어린 사과부터 해야 한다"고 한다. 배우한 기자 bwh3140@hankookilbo.com

어린이집에서 로켓에 대해 배운 아들(5)이 한껏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로켓은 지구 밖까지 날아간대. 로켓 타면 하늘나라에 있는 아빠한테도 갈 수 있는 거야?” 아들은 반년 넘게 못 본 아빠가 너무 궁금한 모양이다. 장롱 속 아빠 옷을 보곤 “이제 여름인데 반팔 옷은 가져갔어?”라고 묻고, 잘 땐 “하늘나라에 아빠 이불은 있어?”라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엄마인 배모(37)씨는 “하늘나라에는 없는 게 없대”라고 밝게 대답한다. 아빠에 대해 물을 때 엄마가 슬픈 내색을 보이면 아이가 죄책감을 느껴 그리운 감정을 숨기게 된다는 주변의 조언을 듣고 늘 밝게 답하려 애쓴다. 하지만 아직도 남편의 죽음에 대해서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너무 많다. 배씨의 남편은 세계 최장 기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투병했던 메르스 ‘80번 환자’다.

뒤늦게 이룬 치과의사 꿈 무너져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남편 김모(사망 당시 35세)씨는 어릴 적 꿈인 치과의사가 되기 위해 20대 후반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6년 공부 끝에 2014년 치과의사가 돼 그 해 서울의 한 치과병원에 취직했다. 하지만 두 달 만에 혈액암의 일종인 악성 림프종에 걸렸고 6개월간 자가 골수 이식 등의 치료를 받고 완치돼 지난해 5월 병원에 복직했다. 그는 복직 일주일 만에 가벼운 감기증세로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5월 27일부터 29일까지 응급실에 머물렀다. 82명을 감염시킨 메르스 ‘슈퍼 전파자’ 14번 환자(36)가 이때 같은 병실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김씨는 그렇게 메르스 ‘80번 환자’가 됐다.

김씨는 확진 판정을 받은 6월 초부터 11월 말까지 무려 172일이나 음압병실에 격리돼 있었다. 메르스 감염 후 림프종이 재발해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극소량의 메르스 바이러스가 계속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10월 초 유전자 검사에서 2번 연속 음성이 나와 한때 퇴원하기도 했다. 배씨는 그 때 남편 모습이 생생하다. “남편이 거실 창문을 열더니 ‘바람 부는 소리, 자동차 경적 소리… 이런 일상의 소리가 너무 그리웠어’라고 말하면서 행복해 했어요.” 김씨가 있었던 음압병실은 공기가 외부로 나가지 못하게 만든 병실로 철저히 차단된 곳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무사히 돌아왔다는 안도감은 열흘도 채 못 갔다. 퇴원 9일만에 고열로 삼성서울병원에 갔던 김씨가 메르스 검사에서 다시 양성이 나와 재입원하게 된 것. 질병관리본부(질본)는 김씨의 재입원을 발표하는 브리핑에서 “체내에 잠복해 있던 극소량의 바이러스가 검출된 것”이라며 재발이 아니라고 강조했고, 서울대병원 의료진도 “(김씨로부터) 바이러스가 감염될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말했다. 11월에는 3일 연속 유전자 검사에서 음성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김씨의 검사 결과가 음성과 양성을 오간다는 이유로 계속 격리했다. 장기간 격리로 김씨의 림프종이 악화됐고, 검사와 치료를 제한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배씨는 “서울대병원에 격리해제와 적극적인 림프종 치료를 요구하면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질본이 결정할 문제’라고 답했고, 질본에 요구하면 ‘의학적 판단은 병원이 할 문제’라며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 남동생의 골수가 일치해 골수이식을 할 계획이었지만, 김씨는 격리 중이던 지난해 11월25일 결국 림프종 악화로 숨졌다. 김씨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은 몸에 맞는 방진복이 없어 아빠의 마지막도 함께 하지 못했다.

국내 메르스 현황.
국내 메르스 현황.

정부도, 병원도 사과하지 않았다

김씨는 국내 마지막 메르스 환자였고, 세계 최장기간 메르스 투병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림프종으로 사망할 때까지 격리를 하는 것이 최선이었는지 배씨는 아직도 의문이다. 배씨는 “질본은 남편을 격리해제했다가 재입원시키면서 확실한 음성이 아닌데도 격리해제한 것이 아니냐는 여론의 질타가 있자 그 후에는 남편이 감염력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격리해제를 해주지 않은 것 같다”며 “격리가 불가피하다 해도 최선의 치료는 받을 수 있게 해 줬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부질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배씨는 지금도 남편을 살릴 수 있었던 여러 상황들을 자꾸 가정하게 된다. 만약 정부가 1차 감염 진원지였던 평택성모병원을 통째로 격리해 환자들이 다른 곳으로 퍼지지 않게 막았더라면, 삼성서울병원이 14번 환자를 신속히 격리했다면, 남편이 적극적인 림프종 치료를 받았다면…. 배씨는 “반복된 정부ㆍ병원의 실수와 무책임이 남편을 죽인 것”이라며 “최선의 치료를 받고 떠났다면 이렇게 원통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삼성서울병원에서 한때 간호사로 일하기도 했던 배씨는 현재 제약 관련 회사에 다니고 있어 업무상 병원에 갈 때가 많다. 아직도 병원 문턱에만 들어서면 남편 생각이 나 가슴이 터질 듯 쿵쾅거린다. 배씨는 한 번도 정부나 병원으로부터 위로나 사과를 받은 적이 없다. 배씨는 남편의 사망원인을 밝히고 책임을 묻기 위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함께 정부,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배씨는 “정부와 병원이 왜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은 채 계속 격리했는지 밝히고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며 “납득할 수 있는 결과가 나와 아들에게 ‘아빠는 잃었지만 이 나라는 믿고 살아도 되는 곳’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도 고통을 겪는 사람은 배씨뿐만이 아니다. 74번 환자(72)는 메르스는 나았지만 후유증으로 아직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슈퍼전파자로 알려진 14번 환자, 박원순 서울시장과 설전을 벌였던 삼성서울병원 의사인 35번 환자(39) 등도 계속 폐 관련 후유증이 있어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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