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본 역학조사관은 2년 계약직…의사들 지원 안 해
환자가 처음 응급실 오면 의료진 등과 접촉하는 구조
제대로된 감염관리 위해
시설·인력 확충 지원 필요
20일은 국내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첫 환자가 발생한 지 1년째 되는 날이다. 38명이 사망하고 1만7,000여명이 격리되는 초유의 사태로 우리 사회는 감염병 공포에 휩싸였고,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지난해 9월 ‘국가방역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우리 방역체계는 과연 얼마나 달라졌는지 감염내과ㆍ예방의학ㆍ응급의학ㆍ의료관리학 전문의 및 보건의료단체 전문가 등 5명의 진단을 들어봤다. 전문가들은 “수십년 간 누적된 한국 의료체계의 문제로 발생한 만큼 단시간 내 해결은 어렵다”고 전제하면서도 “지금까지의 변화로 방역체계로 방역체계가 개편됐다고 보기에는 매우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질본, 여전히 컨트롤타워 되기엔 역부족…인력 양성도 미흡
지난해 사태 초기부터 가장 크게 제기됐던 문제는 신속한 결정을 내리고 현장을 진두지휘 할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점이었다. 메르스 환자 접촉자 격리와 병원에 대한 역학조사 결정은 더뎠고, 정부 부처 간, 정부와 지자체간 협조가 제대로 되지 않아 혼선이 빚어졌다. 감염병에 관한 한 막강한 권한을 가진 미국의 질병통제센터(CDC)와 달리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질본)는 조직의 위상이 낮고 권한 역시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기존 실장급(1급)이었던 질병관리본부장을 차관급으로 격상, 인사ㆍ예산권을 일임해 자율성과 전문성을 높여주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에 따라 올해 2월 신임 정기석 본부장이 첫 차관급 본부장으로 취임하고, 4월부터는 6급 이하 공무원에 대한 승진 등 인사ㆍ예산권을 일부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보건복지부 소속기관이라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엄중식 한림대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질본의 결정권한이 일부 커지긴 했지만 여전히 독립성이 부족해 감염병 유행 시에 주도적으로 대응하기 힘든 구조”라고 평했다.
위기상황에 대비한 인력 양성도 미흡하다. 메르스 사태로 질본 소속 정규직 역학조사관이 2명에 불과하며 역학조사 대부분을 경험이 적은 공중보건의들이 맡고 있다는 실태가 드러났다. 질본은 지난해 9월부터 역학조사관 30명을 채용하기 위해 세 차례나 공개채용을 했지만 지원자가 미달돼 25명 밖에 채용하지 못했다. 2년 계약직인데다 업무도 행정업무 위주여서 인재들에게 유인책이 되지 못했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예방의학) 교수는 “계약직이고, 비전이 없으니 의사들이 지원하지 않은 것”이라며 “전국 시도에 감염병 관리본부를 만들어 지원자들이 이곳에서 현장경험을 쌓고 중앙인 질본에서도 일을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절반만 인상한 감염관리 수가…감염병전문병원은 하세월
메르스는 병을 고치러 갔던 병원에서 병을 얻어온 사태였다. 가장 많은 환자를 감염시킨 응급실 등 병원 내 감염관리는 감염병 유행을 막기 위한 핵심 조치였다. 정부는 최근 응급실 내 감염병 환자 선별 및 격리진료에 대한 수가(진료비)를 신설하고, 감염관리 전담인력 배치와 감염관리실 설치에도 수가를 만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반쪽 짜리 대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수가 인상 수준은 전문가들 요구 수준의 절반 정도 밖에 안 된다”며 “감염관리를 위해서는 병원 종사자들에 대한 교육, 가이드라인 제정, 병원 평가에 반영 등을 종합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강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환자가 처음 응급실에 왔을 때는 여전히 의료진과의 대화, 수납 과정에서 다른 사람과 접촉하게 되는 구조”라며 “이를 보완하는 시설 및 인력 확충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 초부터 전국 420여개 응급실 중 권역ㆍ지역응급센터 140여개에서는 감염병 환자에 대한 선별진료가 의무화됐지만 여전히 일부 응급실에서는 환자 선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 역시 백년하청이다. 정부는 현재 국립중앙의료원을 중앙감염병전문병원으로 지정 또는 설립할 예정이지만, 국가가 직접 설립할지 병원 측이 설립하는 방식으로 할지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서울 을지로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의 원지동 이전 시기도 불투명해 4년 정도 걸리는 병원 건립의 첫 삽을 언제 뜰지도 불확실하다. 올해 초부터 24시간 감염 긴급상황실(EOC)과 현장 즉각대응팀이 가동에 들어갔지만 허점도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아랍에미리트 여성이 메르스 의심환자로 신고됐을 때 병원에 도착하는 데 2시간 40분이나 걸리기도 했다.
“범부처가 나서서 근본적인 대책 세워야”
전문가들은 현재까지의 방역체계 개편 속도와 방향을 미뤄볼 때 전반적으로 정부 개편 의지가 부족하다고 평했다. 김윤 교수는 “정부가 메르스 같은 사태를 다시 겪지 않으려면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고민하고 분석해야 하는데, 문제를 찾아내기보다는 잊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방역체계 구축을 위한 범정부적 대책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엄중식 교수는 “인력 보충이나 재원 확보는 기획재정부, 행정자치부 등 예산권과 인사권을 가진 부처의 협조가 필수”라며 “범부처 수준의 큰 틀에서 방역체계 개편을 조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공의료체계를 강화해야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 정책위원장은 “사회안전망으로써 공공의료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한 해법이라는 것이 증명됐다”며 “현재 병상 기준으로 10%뿐인 공공병원 비율을 최소한 30%로 끌어올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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