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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50돌 ‘세계시인선’ 재발간 초심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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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50돌 ‘세계시인선’ 재발간 초심 다진다

입력
2016.05.18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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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가 50주년을 맞아 내놓은 '세계시인선' 15권. 100권 발행이 목표다. 민음사 제공
민음사가 50주년을 맞아 내놓은 '세계시인선' 15권. 100권 발행이 목표다. 민음사 제공

“우리가 보는 외국인 시집은 일본판 중역본이라 신뢰가 안 가네. 원본을 실어놓고 번역을 옆에 나란히 배치하면 신뢰가 높아지지 않을까?” 1973년 출간되기 시작해 43년간 63권까지 발간된 민음사의 ‘세계시인선’. 민음사의 저력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 받는 이 시리즈의 시작은 문학평론가 김현에게 건넨 박맹호 회장의 작은 제안이었다.

민음사가 19일로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이에 맞춰 민음사의 간판과도 같은 ‘세계시인선’15권을 새로 발간했다. 원문과 번역을 나란히 실은 것은 그대로 유지했다. 로마시인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서정시를 완역한 ‘카르페 디엠’, 미국의 현대시인 부코스키의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극작가로 널리 알려진 브레히트의 ‘검은 토요일에 부르는 노래’, 헤밍웨이의 ‘거물들의 춤’ 등은 이번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다.

1973년 첫 선을 보인 '세계시인선' 시리즈 가운데 하나. 민음사 제공
1973년 첫 선을 보인 '세계시인선' 시리즈 가운데 하나. 민음사 제공

참여시인으로 알려진 김수영의 서정적 작품을 한데 모은 ‘꽃잎’, 북한에서 발표한 시까지 포함시킨 백석의 ‘사슴’은 시리즈에 처음 포함됐다. 앨런 포의 ‘애너벨 리’와 보들레르의 ‘악의 꽃’은 시인 김경주, 문학평론가 황현산의 새 번역으로 선보인다. 민음사 관계자는 “기존 시인선 가운데 그대로 쓸 수 있는 건 표지와 편집을 다듬어 내고, 내년부터는 새로운 기획을 통해 시인선 발간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재발간을 시작으로 내년까지 50권, 궁극적으로는 100권으로 완성시킨다는 게 민음사의 계획이다.

1966년 가을 민음사의 첫 사무실이던 서울 종로구 청진빌딩 옥탑방에서 박맹호 회장이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민음사 제공
1966년 가을 민음사의 첫 사무실이던 서울 종로구 청진빌딩 옥탑방에서 박맹호 회장이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민음사 제공

민음사는 가업을 물려받는 대신 소설가를 꿈꾸던 박맹호 회장이 1966년 서울 청진동 옥탑방에서 시작한 출판사다. 자신에게 부족한 문학적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다른 이들에게 주자는 생각에서였다. 국내에 요가를 첫 소개한 ‘요가’로 돈을 번 뒤 문학으로 눈을 돌렸다. 1976년 계간지 ‘세계의 문학’을 창간해 우리 문학과 세계 문학의 만남도 주선했다. 1994년 어린이책 전문 ‘비룡소’, 1996년 대중문학 전문 ‘황금가지’, 1997년 과학 전문 ‘사이언스북스’ 등을 잇따라 만들면서 한국 최고 출판그룹 가운데 하나로 발돋움했다.

그런 명성을 생각한다면 ‘세계시인선’ 재발간으로 50주년을 기념하고 넘어가는 것이 너무 조촐하게 여겨진다. 지난해 현암사가 설립 70주년 기념 도서 전시회를 열고, 올해 창비가 계간 ‘창작과비평’ 50주년 행사를 성대히 치른 것과도 대조된다. 박 회장 건강이 좋지 않은데다 여러 여건상 내실을 다지는 차원에서 조용히 넘어가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 상황도 녹록지 않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에 비해 34%가 줄었다. 도서정가제로 인해 ‘세계문학전집’ 매출이 감소한 게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오늘의 작가상' 개편 기자간담회 당시 박맹호 회장. 민음사 제공
지난해 '오늘의 작가상' 개편 기자간담회 당시 박맹호 회장. 민음사 제공

이에 대해 박근섭 사장은 “출판사는 뭐라 해도 책으로 말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여태껏 사사를 내거나 기념행사를 여는 것보다는 책을 내는 방식으로 기념해왔다”면서 “밖에선 조촐한 50주년이라고 하지만 우리로선 ‘세계시인선’을 다시 기획해 낸 것이 큰 의미”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민음사는 분위기 쇄신을 위한 몇 가지 복안을 갖고 있다. 우선 지난해 종간한 ‘세계의 문학’ 뒤를 이을 새 문학지 창간이다. ‘에디터러리’라는 이름 아래 기획력을 강조한 문학지를 8월에 선보인다. 또 ‘북클럽’을 활성화해 독자를 확장키로 했다. 마지막으로 황금가지는 점차 부각되고 있는 장르문학, 온라인 문학 시장을 겨냥한 ‘온라인 소설 연재 플랫폼’을 하반기 내놓는다. 민음사 관계자는 “위기라고 말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기획력”이라면서 “기획력 강화를 통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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