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타자의 타격 밸런스를 흔드는 데 빈볼(bean ball)만큼 효과적인 건 없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는 공을 맞아본 선수라면 타석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타자를 ‘혼내야겠다’고 생각할 때 투수는 종종 빈볼을 던진다. 실투를 가장하기 때문에 고의성을 밝히기도 어렵다. 비신사적 행위인데도 야구의 흥미를 더하는 ‘필요악’이라는 인식도 적지 않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초특급 투수들이 빈볼에 능했던 것은 이런 심리와 무관치 않다. 각 팀이 ‘빈볼 제구력’이 좋은 투수를 따로 확보해 둔다는 얘기도 있다.
▦ 15일 시카고 컵스의 투수 제이크 아리에타가 던진 공이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맹활약 중인 강정호의 목 바로 아래를 강타하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시속 148㎞에 달하는 강속구였다. 아리에타는 고의성을 부인했지만, 사이영상 수상에 정교한 제구력을 자랑하는 그가 실수로 그런 터무니없는 공을 던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메이저리그에 복귀하자마자 연일 맹타를 휘두르는 강정호를 손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음직하다. 상대가 지난해 그에게 치명적 무릎 부상을 안긴 팀이라는 것도 논란을 키웠다.
▦ 상대의 견제와 위협에도 강정호는 보란 듯이 자신의 가치를 실력으로 입증해 보이고 있다. 다음날에는 선제 적시 2루타와 홈런으로 승리를 결정지어 시카고 컵스의 코를 납작하게 했다. 8경기 만에 홈런이 벌써 4개다. 안타도 대부분이 장타다.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뛰는 박병호의 활약도 그에 못지않다. 14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전에서 첫 연타석 홈런을 쏘아 올린 그는 홈런 9개로 아메리칸리그 5위이고 팀내에서는 가장 많다. 미국 언론은 “헐값에 데려왔다”는 둘의 플레이에 연일 찬사를 보내고 있다.
▦ 강정호 박병호가 계속 이런 페이스를 유지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게임에 임하는 자세는 믿음직스럽다. 클린트 허들 피츠버그 감독은 “선수들이 자기 상태에 대해 말하는 것과 실제가 다른 경우가 많은데 강정호는 아주 좋은 자기평가 능력을 가졌다”고 했다. 강정호의 말은 신뢰할 수 있어서 팀을 위한 판단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앞서 연타석 홈런을 치고도 9회 마지막 득점 기회에서 삼진으로 물러난 것을 자책하는 박병호도 그래서 듬직하다. 교언영색이 판치는 세상에서 그나마 아침을 즐겁게 하는 두 사람이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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